김대중 대통령

제 15대 대통령 (1998년 2월~2003년 2월)

생가 이야기

1924년 전라남도 신안군의 생가에서 태어나 12세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관리실 추모관
유년시절

김대중 대통령이 태어난 당시 하의도는 인구 1만 명 이내의 섬이었는데, 대한제국 시기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시집갈 때 이 섬을 일본에 팔아넘기는 바람에 섬 전체가 동양척식주식회사 소유가 되면서 주민들은 일시에 소작농으로 전락해 버렸다

[출처 손세일 ≪김대중과 김영삼≫ 일월서각, 1985]

아버지 김운식씨는 소작인들을 대표하여 일본인들에게 항의나 진정을 내곤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가 태어난 이러한 토양이 민족과 같이 불의에 항거하는 힘을 주었다”고 추억하곤 하였다. 또한 김대중 대통령의 아호 '후광'은 바로 이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생가위치

전라남도 신안군 하의면 후광길 255

찾아가는길

김대중 대통령의 자서전에 의하면 1924년 전라남도 목포 앞바다에서 뱃길로 2시간 거리인 해상 남서쪽 약 57.6km 거리에 위치한 신안군 하의면 후광리 하의도에서 아버지 김운식씨와 어머니 장수금씨 사이에서 3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생가현황

12세에 목포로 이주하기 전까지 후광리의 생가에서 살았던 김대중 대통령의 생가는 오래전에 없어졌던 것을 1999년 종친들이 복원하여 신안군에 기증하였다. 복원된 생가는 6칸으로 안채와 창고 1동, 화장실 1동 등의 부속채와 헛간 등으로 되어 있으며, 생가 옆에 추모관과 기념품 판매장이 있다.

[생가 안내판 中 발췌]


의상갤러리


식사이야기

절망, 희망, 감격의 시대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경비의 절감을 지시했다.

 

IMF 구제금융 상황에서 청와대에 들어온 김대중 대통령은 모든 경비의 절감을 지시했다. 과거 호텔 직원들이 파견되어 나왔던 공식행사도 50명 이하 규모는 관저 요리사들이 모두 소화했다. 운영관인 문문술 씨는 반찬가짓수를 세 가지로 줄이라는 명령을 받고 최소 원가로 만들 수 있는 음식으로 식단을 짜기 시작했다. 영부인인 이희호 여사는 식자재 장만에 낭비가 없는지 주방 냉장고를 수시로 열어 점검했다.

 

대통령은 이전 식사 때 남긴 음식을 다시 차리라고 하면서 운영관에게 밥상 물가를 자주 물었다. 문문술 씨는 “식사를 하시면서 가끔 그러십니다. 요즘 물가는 어떠냐. 시장에는 가봤느냐, 뭐가 많이 가격이 올랐느냐, 또 반찬을 이렇게 보시면서 양파값은 좀 어떻더냐, 뭐 그런 걸 자주 질문 하셨지요.”(1) 라고 회고한다.

 

경력 있는 주방장이 청와대 운영관을 맡은 것은 문문술 씨부터다. 이전에는 대부분 비서관실 소속 공무원이 운영관을 하고 별정직인 요리사들이 실제 요리를 맡았다. 운영관은 대통령 내외가 먹는 음식의 메뉴를 결정하고 식재료를 구매, 직접 요리도 하고 각 분야 요리사들도 챙기는 역할까지 맡았다.

김대중 대통령 사진

“취임 초기, 입맛을 잃어 식사를 잘 못 하는 대통령의 건강 유지를 위해 문문술 씨는 식단에 무척 신경을 썼다.”

 

취임 초기, 입맛을 잃어 식사를 잘 못 하는 대통령의 건강 유지를 위해 문문술 씨는 식단에 무척 신경을 썼다. 청와대 식단에는 홍어, 갯장어, 톳나물, 돌산 갓김치 같은 호남의 향토색 짙은 음식들이 등장했다. 원래 왕성한 식욕을 가진 김 대통령은 대식가로 소문이 났는데 시래깃국, 설렁탕, 매운탕 같은 국물 음식을 좋아하고 중국 음식도 즐겨 먹는 편이었다. 대통령의 입맛을 살릴 음식으로 홍어가 첫손가락에 꼽히지만, 외환위기 상황이라 한동안 먹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과도한 업무 일정을 진행했다. 해외 투자 확보와 수출증진을 위해 외국 순방을 자주 다니면서 대통령의 체중이 계속 줄었다. 재임 기간, 허리둘레가 가장 많이 줄었을 때가 IMF 시기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중 최초로 옷을 수선해서 입었다.

 

국민의 정부는 외채 상환과 함께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국정운영의 주요과제로 삼고 금강산 관광,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국민의 정부는 외채 상환과 함께 북한에 대한 햇볕정책을 국정운영의 주요과제로 삼고 금강산 관광,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2000년 6월 13일,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가운데, 평양 순안 국제공항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힘차게 손을 맞잡고 뜨겁게 포옹했다. 남북 정상은 평화와 화해 협력에 대한 의지를 확인하고 구체적인 실천 사항에도 극적으로 합의했다.

 

2박 3일 동안 회담이 진행된 평양 백화원에서 북측이 준비한 첫 만찬을 열었다. 이름도 생경한 칠면조 향구이, 생선 수정묵과 냉채, 삼지연 청취말이쌈, 쑥송편과 쉬움 지짐, 약밥, 육육날개탕, 젖기름빵, 소고기 굴장즙, 칠색 송어 등의 산해진미가 남측 참석자들을 즐겁게 했다. 만찬 참석자들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북한 최고의 요리를 즐기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공을 기원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주최한 남측의 답례 만찬에서는 비빔밥과 조선 궁중음식 정찬 코스로 순수 한식 요리를 선보였다. 특히, 비빔밥은 궁중식 골동반으로 남북의 조화와 화합의 의미를 담아 준비했다. 두 정상은 남측의 공식 만찬용 술인 ‘문배주’로 건배하며 새천년 남북의 역사적인 만남을 기념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서울과 평양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이희호 여사는 “나이 든 사람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울부짖고 눈물을 쏟아내는 장면을 보면서 우리도 많이 울었어요. 남편은 대통령 되기를 잘했다고 했지요. 평양에 간 보람이 있었다고요.”(2)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1985년 첫 상봉 이후 15년 만의 만남이었다.

 

(1) 인용 - 송영애 『음식이 정치다』 채륜서
(2) 인용 -「고난의 길, 신념의 길 이희호 평전 (73) 」 『한겨레』 2016. 9. 7

참고자료
참고자료
  •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웅진지식하우스
  • 「고난의 길, 신념의 길 이희호 평전 (73) 」 『한겨레』 2016. 9. 7
  • 「장수하는 한국의 대통령들-김대중 전대통령」 『백세시대』 2006.9.16
  • 「함께 들어간 DJ살림꾼들」 『동아일보』 1998.2.26
  • 「정권교체=靑밥상 교체, 과연 MB는?」 『한국일보』 2008.02.15
  • 「“DJ는 대식가”/청와대회담후 “칼국수론 부족” 아구찜 식사」 『세계일보』 1996.04.20
  • 「남북정상 만찬에 비빔밥 올린다」 『NK조선』 2000.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