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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 서한문으로 살펴보는 한미동맹의 시작
  • 70주년 기획전시
  • 한미동맹 기록물 복원사례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만나다.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을 만나다

자주찾는 정보

전시관 관람

개관일 : 화요일~일요일, 10시-18시

휴관일 : 월요일, 법정공휴일(어린이날은 개관)

관람료 : 무료 (3층 개편으로 일부 관람제한)

문     의 : 044-211-2181, 2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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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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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록 그순간

  • 농업인의 날

    ‘농업인의 날’은 WTO체제 출범에 따라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고 농업·농촌의 중요성과 가치를 국민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 1996년부터 제정·시행하였다. </p><br/> 기존에는 매년 5월 넷째 화요일을 ‘권농일’로 지정하여 정부행사를 가졌다. 1968년 제20회 권농일 행사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은 가뭄에도 풍년이 될 수 있도록 수자원 및 지하수 개발, 관계시설ㆍ다목적 댐 건설을 추진하고, 특용작물ㆍ축산업 등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는 작물을 재배할 것을 강조했다. </p><br/> 이처럼 권농일은 식량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농민들에게 생산 증대를 위해 더욱 힘쓰도록 독려하는 뜻이 담겨있었다. 하지만 소비자의 기호에 맞고 고품질의 농산물 생산이 요구되고 특히 WTO체제 출범 이후 개방화, 세계화 그리고 전문화 등 변화된 농업 환경에 맞춰 새로운 농업인의 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p><br/> <script> $(document).ready(function(){ $("#btnMore").on("click",function(ev){ ev.preventDefault(); $("#hdiv").toggle(300);}); $("#hdiv").hide(); }); </script> <a class="button size2 color1 invert" id="btnMore" href="return false">더보기</a> <div id='hdiv'> <br/><Br/> <p > 1992년 12월 김영삼 대통령 후보가 농업인의 날 제정을 선거 공약에 포함하면서 추진하였는데 기념일 날짜를 두고 관련 단체 간 이견이 지속되었다. 정무수석실에서 대통령에게 보고한 문서에 따르면, 농민단체들은 11이라는 숫자가 주역으로 풀이할 때 흙(土)을 상징한다며 11월 11일을, 농·축협 등의 기관들은 축제 분위기 속에 행사를 개최할 수 있다며 추석 다음 날을 주장했다. 결국 1996년 5월 30일 국무회의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권농의 날을 폐지하는 대신 11월 11일을 농어업인의 날로 제정하였다. </p><br/> <p > 다만, 그해 8월 해양수산부가 신설됨에 따라 ‘농업인의 날’로 명칭을 바꾸고 제1회 기념식을 가졌다. 기념식은 전국농민단체협의회를 비롯한 20개 단체 대표 등 4천 5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올림픽 펜싱경기장에서 열렸다. 주요 행사로 농업인의 날 기념식 및 자축행사, 농업인합동결혼식, 여성 농업인 백일장, 학술대회, 우수농산물 품평회 등이 열렸다. </p><br/> <p > 제1회 농업인의 날 기념식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농업은 성장하는 복합산업이며 부가가치와 고용을 창출하는 미래산업이라고 강조하며, 농촌을 살리기 위해 농업 구조개선사업의 집행을 앞당기고 농어촌 특별세 등 연간 8조원의 재정을 투입하고, 환경농업육성법을 제정하여 우리 농업이 환경을 가꾸고 지키는 생명산업으로 육성하겠다고 하겠다고 밝혔다. </p><br/> <p class="last"> 농업인의 날을 맞아 공개하는 농업인의 날 행사 계획 및 결과, 기념행사 동영상, 대통령기념사 등의 대통령기록물은 농업인의 날 제정 경위와 역대 정부의 농업정책 방향 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p><br/> </div>

  • 독도의 날

    독도의 날은 고종황제가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공표한 대한칙령 제 41호 제정일인 1900년 10월 25일을 기념하고 독도가 대한민국 영토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2000년 민간단체인 독도수호대가 제정한 날이다. </p><br/> 독도영유권을 둘러싼 한일양국의 논쟁은 1952년 1월 18일에 선포된 평화선 설정이 도화선이 되었다. 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라는 사적(史跡)을 모아 입증하려고 하자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도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사적(史跡)을 모아 문서를 작성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p><br/> 1963년 비밀문서로 작성된 「독도문제」(외교부)에는 일본의 주장과 이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 정리되어 있다. 일본은 1954년부터 국제사법재판을 통해 해결할 것을 여러 차례 제의하였으나 한국의 독도에 대한 영유권은 자명한 것이고 일본의 독도의 국제분쟁지역화 전략에 휘말릴 여지가 있어, 일본의 제의를 거절하였다. 이후에도 일본의 분쟁지역화 시도와 함께, 독도 영유권에 대한 국제법 및 역사적 논쟁은 아직도 되풀이되고 있다. </p><br/> <script> $(document).ready(function(){ $("#btnMore").on("click",function(ev){ ev.preventDefault(); $("#hdiv").toggle(300);}); $("#hdiv").hide(); }); </script> <a class="button size2 color1 invert" id="btnMore" href="return false">더보기</a> <div id='hdiv'> <br/><Br/> <p > 1980년 정부는 독도지구 측량기준점 정비 및 지도 제작을 위해 독도 일원의 천문측량과 항공사진측량을 비밀리에 실시하였고 1997년에는 「독도 등 도서지역의 생태계보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였다. </p><br/> <p > 2005년 독도의 실효적 지배를 위해 「독도의 지속가능한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체계적인 독도의 이용 및 보전의 기틀을 마련했다. 위 법에 따라 독도주변의 생태계, 자연환경 수산자원 등의 조사, 독도 내 시설관리 등 5개 분야에 342억원을 투자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독도의 지속가능한 기본계획(2006∼2010)을 수립하였다. </p><br/> <p >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과정을 정리할 것을 지시하였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1951) 과정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조약 초안에는 독도가 우리 영토에 포함되었으나, 주일 미국 정치고문이었던 시볼트(W.J. Sebald)가 미 국무성에 보낸 전보를 계기로 독도가 일본 영토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측의 적극적인 로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내용과 조약체결 과정에서 독도가 우리영토에서 누락된 경위와 미국 입장이 변화하게 된 동기 등이 자세히 담겨 있다. </p><br/> <p class="last"> 노무현 대통령은 또한 2006년 「한일 관계에 대한 대통령 특별담화문」을 발표하여, “독도문제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문제와 더불어 한일 양국의 과거사 청산과 역사인식, 자주독립의 역사와 주권 수호 차원에서 정면으로 다루어 나가겠습니다.”라고 우리의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p><br/>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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