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대통령

제 14대 대통령 (1993년 2월~1998년 2월)

생가 이야기

1927년 경상남도 거제시의 생가에서 태어나 8세까지 이곳에서 살았다.

생가입구
유년시절

김영삼 대통령이 태어날 무렵 그의 집안은 어선 10여 척 이상 보유하였으며 멸치 어장을 꾸려가는 인근 마을에서 꽤 알려진 알부자 집안이었다.

[출처 이명박 ≪신화는 없다≫ 김영사, 1995]

8세에 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장목보통소학교에 입학했는데, 학급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으며, 통학 거리가 편도 20리였다. 때문에 그의 부모는 근처에 하숙을 마련해 주어 하숙생활을 하였다. 이후 서울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이던 그는 1951년도에 이화여자대학교 3학년이던 동갑 손명순 여사와 결혼하여 생가에서 신접살림을 차렸다.

생가위치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옥포대첩로 743-1

찾아가는길

김영삼 대통령은 1927년 음력 12월 4일 경상남도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현 경상남도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1371번지 큰달섬에서 김녕 김씨 김홍조씨와 박부련씨 사이에서 3남 5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호적상에는 1927년 12월 20일생으로 되어 있음.)

생가현황

1893년 목조기와 건물 5동으로 세워진 생가는 100년 이상의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전체가 심하게 노후되어 전면적인 정비가 시급했다. 그러던 중 2000년 8월 김영삼 대통령의 부친 고 김홍조옹이 대지와 건물 일체를 거제시에 기증하였고, 거제시가 문화유산으로 길이 보존하기 위해 2001년 5월 9일 현재의 모습으로 증건하였다. 현재 총 대지면적 536㎡에 목조기와 건물 3동(본채 75.24㎡, 사랑채27㎡, 사주문 5.81㎡)과 석축 및 석장 130m가 축조되어 있다. 본채의 상량문은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이며 생가에서 바라보이는 왼쪽 산 능선에 부친 고 김홍조옹과 모친 고 박부연 여사의 묘소가 있다.

[생가 안내판 中 발췌]


의상갤러리


식사이야기

청와대 칼국수, 개혁의 상차림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이름 지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자신의 정부를 ‘문민정부’로 이름 지었다. 그 이름에는 ‘신한국 건설’이라는 대통령의 큰 꿈이 담겨 있었다. 김 대통령은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가장 먼저 안가를 철거하고 청와대 앞길을 개방했다. 자신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의 재산을 공개하고 정치자금 근절을 선언했다. 김 대통령은 기세를 몰아 조선총독부 건물이었던 중앙청 건물 철거, 금융실명제 전면실시,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 해체 등 단호한 결단력과 추진력을 보여주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제도라고 하는 지방자치제도 문민정부에서 시작되었다. 그밖에도 개혁의 변화는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외국 원수가 방한하기 2~3일 전부터 서울시청 앞과 국립중앙박물관 앞, 김포공항 등을 장식하던 대형 환영 아치와 플래카드가 사라졌다. 유명호텔 음식을 주문해 외국 손님을 접대하던 방식을 폐지하고 청와대 식당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도록 했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의전 절차를 대폭 간소화해 새로운 의전 관례를 만들어 나갔다.

김영삼 대통령 사진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청와대의 공식 식탁에는 칼국수 한 그릇과 떡 한 조각이 올라왔다.”

 

단 한 푼의 정치자금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청와대의 공식 식탁에는 칼국수 한 그릇과 떡 한 조각이 올라왔다. 청와대를 방문한 손님접대용 식단이 양식과 중식에서 하루아침에 칼국수로 바뀐 것이다. 그것은 절약과 개혁을 암시했다.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이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김 대통령은 취임 2주년에 가진 젊은이들과의 대화에서 청와대의 음식이 왜 칼국수인지를 묻는 질문에 ‘서민적인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대통령의 평소 식단도 무척 간단했다. 조깅 후 먹는 아침은 콩찰떡과 사골 우거짓국이 전부였다. 영양 보충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끼니였던 저녁에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생선 위주의 음식이 올랐다. 잡곡밥, 우럭 미역국, 부추김치, 배추김치, 감자전, 도미찜 정도였다.
김 대통령이 생선을 좋아한 것은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난 영향이다. 김 대통령은 어민들과 친숙했고 함께 어울려 식사하기를 즐겼다. 그런 대통령을 위해 조리팀은 우럭 미역국, 광어 미역국, 대구 미역국 등 온갖 종류의 생선 미역국을 끓였다.

 

청와대 칼국수는 중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청와대 칼국수는 중국에서도 화제가 됐다. 1993년 5월 청와대를 예방한 첸치천(전기침) 중국 부총리 겸 외교부장과 한식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 김 대통령이 “나는 원래 중국음식을 좋아하는데 대통령 취임 이후 한 번도 먹지를 못했다.”(1)라고 말하자 첸 부총리는 중국신문을 통해 청와대 국수가 중국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로부터 2년 반이 지나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이 우리나라를 국빈 방문했다. 1995년 11월 13일 중국 국가원수로는 처음으로 내한한 장쩌민 중국 국가주석은 약식으로 진행한 환영식 후, 김영삼 대통령과 예정시간의 2배 가까운 시간 동안 단독회담을 했다. 두 정상은 회담에서 양국 간 공동관심사와 한반도 평화, 동북아 안정 등 국제정세 전반을 폭넓게 논의했으며 장쩌민 주석은 경제무역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11월 14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장쩌민 주석을 위한 국빈만찬에는 장 주석이 즐긴다는 갈비찜을 특별히 준비했다. 만찬 행사는 우리 측에서 3부 요인·정계·경제계·언론계·학계·문화예술계 인사 1백70여 명, 중국 측 수행원 3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2시간 30분 동안 진행하며 두 나라가 새로운 동반자로서 협력할 것을 재확인했다.

 

칼국수가 청와대의 대표 음식이 된 후, 3년쯤 지나자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대통령의 영양 상태에 우려가 생기기 시작했다. 손님들은 한 번씩 먹는 별미지만, 대통령은 3년 내내 점심으로 칼국수를 먹어야 했던 것이다. 청와대 요리사, 이근배 씨는 “김영삼 대통령께서 면을 좋아하셨지만 3~4년 동안 계속 면을 드실 것이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죠”(2)고 말한다. 이근배 씨는 고민 끝에 칼국수의 육수를 진하게 하고, 인절미나 과일, 호박전같이 곁들이는 음식을 내기 시작했다.

 

(1) 인용 -「"靑瓦臺 국수오찬 중국신문 보고 잘 안다"전부총리」 『부산일보』 1993.05.28
(2) 인용 -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P138

참고자료
참고자료
  • MBN <청와대의 밥상>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 박영규 『한권으로 읽는 대한민국 대통령실록』 웅진지식하우스
  • 이근배 『청와대 요리사』 풀그림
  • 「칼국수 들 동안 측근은 스테이크」 『동아일보』 1998.1.15.
  • 「음식이름 유감」 『세계일보』 1995.3.4.
  • 「수치로 본 김영삼 3년」 『매일경제』 1996.2.22.
  • 「YS 청와대 조리장 류한열 씨 "어떤 음식도 맛있게 남김없이 드셔"」 『부산일보』 2015.11.24.
  • 「집무실 개방...부드러워진 청와대」 『국민일보』 1993.3.1.
  • 「“청와대 「칼국수접대」본받자”」 『세계일보』 1993.6.17.
  • 「청와대 「알뜰살림」 18억 절약」 『국민일보』 1994.2.19.
  • 「대통령의 식성(청와대)」 『서울신문』 1994.5.28.
  • 「강택민 내한 “양국은 아시아 중요 국가”」 『경향신문』 1995.11.14
  • 「“새 동반관계” 우호 협력 재확인 강택민 주석 방한 이모저모」 『국민일보』 1995.11.14
  • 「청와대 뜰 거닐며 단풍화제 정담, 강택민 방한 스케치」 『한국일보』 1995.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