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싱가포르 동남아연구소(ISEAS(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연설일자 2000.11.27 대통령 김대중 연설장소 국제
유형 기타 출처 김대중대통령연설문집 제3권 / 대통령비서실 원문보기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존경하는 고촉통 총리 각하와 리센룽 부총리,

치아청푹 동남아연구소 회장과 치아시오유에 소장,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내외귀빈 여러분!

오늘 제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이 동남아연구소에서 강연하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싱가포르는 탁월한 지도자인 리콴유, 고촉통 양대 총리의 지도 아래서 세계최고의 경쟁력과, 사회적 안정과 복지를 이루어냈습니다. 이러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내는 데는 ISEAS와 같은 탁월한 연구기관의 공헌이 컸다는 것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는 역사적으로도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19세기말 일본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승전을 통해 한반도를 식민지화했습니다.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중국대륙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등 동아시아 일대를 침략했습니다.

1950년에 일어난 한국전쟁 역시 여러분의 기억에 생생한 대로 거의 모든 동아시아 국가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전쟁의 영향 속에 끌어들였습니다. 이와 같이 지정학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는 한반도에서의 평화는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50년이 되었습니다. 그 동안 남북한은 적대관계로 일관해 왔고 불신은 극도에 달했었습니다. 세계적으로 이루어진 냉전의 종식도 외면해 왔습니다.

그러나 1998년 2월, 한국에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한반도에는 새로운 기운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대통령 취임식에서 저는 햇볕정책의 3원칙을 발표했습니다. 그것은 '첫째, 북한의 어떠한 무력도발도 용납하지 않겠다. 둘째, 우리도 북한을 해치거나 흡수통일을 기도하지 않겠다. 셋째, 남북은 서로 화해협력해서 평화공존하고 평화교류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한반도 주변에 있는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의 4대국과, 싱가포르를 선두로 전세계의 나라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리콴유 선임장관과 고촉통 총리는 한국을 방문하여 이러한 우리의 햇볕정책을 공식적으로 지지해 주었습니다. 이러한 전세계적인 지지는 우리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북한은 당초에는 매우 거부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북의 체제를 붕괴시키려는 음모다', '우리의 무장을 약화시키려는 계략이다'는 등 공개적인 비난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국민의 정부는 우리민족 상호간의 평화와 협력, 그리고 장차의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은 이 길밖에 없다고 확신하고, 인내심을 갖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또한 실천해 왔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역대정권과는 달리 미.일 등 우방국가에 대해서 북한과 대화하고 경제적 지원을 하도록 부탁했습니다. 전세계에 대해서 북한과 국교를 하고, 교류를 하도록 요청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우리의 노력을 외면한 채 미국과의 관계만을 먼저 개선하면서 남한을 외면하는 정책을 고수했습니다. 소위 '통미봉남'의 정책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 미, 일 3국간의 굳건한 공조는 그러한 북한의 정책에 성공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특히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남한을 도외시할 수 없다. 한반도 문제 해결의 당사자는 남북한이다. 남한과의 관계개선이 있어야만 미국과의 관계개선도 가능하다'는 것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수 차례에 걸쳐서 저의 햇볕정책의 지지를 선언했습니다. 일본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북한의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전세계의 여론은 계속해서 북한이 남한과 대화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마침내 북한은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지난 3월 9일 저는 독일 베를린의 자유대학에서 연설을 했습니다. 그 연설 속에서 저는 다시 한번 햇볕정책의 3원칙을 천명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독일식의 흡수통일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능력도, 필요도 없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북한과의 평화공존과 평화교류, 이 두 가지가 우리의 당면한 지상목표라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저는 북한의 경제적 어려움을 돕기 위해서 이를 적극 지원할 용의를 표시했습니다. 그리고 남북의 정상이 직접 만나서 대화할 것을 제의했던 것입니다. 이 베를린 선언은 북한이 우리의 진의를 확실히 인정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북한은 마침내 우리와의 대화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13일 역사적인 평양방문을 이루었습니다. 평양을 방문할 때 저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분단된 조국의 땅을 처음으로 가게된 감회도 컸고, 또 과연 이 회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 지 많은 염려도 갖고 북한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2박 3일에 걸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길고 진지한 회담 끝에 마침내 우리 두 사람은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 냈습니다.

저는 북한과의 사이에서, 첫째로 민족의 통일을 자주적으로 이룩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당장 완전한 통일은 어렵다는 것도 우리는 인정했습니다. 우선은 서로 평화공존하고 평화교류하는 데 치중하기로 했습니다.

북한은 종래의 일관된 주장인 '당장의 통일'로 나아가는 '중앙연방제'를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바꿔서 우리 정부의 1민족 2체제 2독립정부의 '남북연합제'에 매우 가까이 접근해 왔습니다. 통일에의 접점을 찾은 것입니다.

둘째로, 이번 방북에서 거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제가 제기한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북한이 동의를 한 것입니다.

한반도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지정학적으로 대륙과 해양을 연결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19세기말에도 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반도를 지배하기 위해서 청일전쟁이 있었고 러일전쟁이 있었습니다. 두 전쟁 모두 일본이 이겼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우리는 일본에 병탄 당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대국들이 포진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미, 일, 중, 러 4대국에 둘러싸여 있는 유일한 나라가 한국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해 있는 것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세력균형과 안정을 가져오는 길이라고 저는 확신해 왔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은 민족의 안전을 위해서 종래 50년에 걸친 미군철수 주장을 접고, 저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참으로 뜻깊은 합의였습니다.

이로써 한반도에서의 남북간의 전쟁방지는 물론 장차 통일 이후에도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은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와 안정에 밀접한 영향을 줄 것이라는 점을 여러분도 동의하시리라 믿습니다.

세번째는, 북한과의 교류협력에 합의를 본 사실입니다. 우리는 남북한에 있는 1천만에 이르는 이산가족들이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상봉할 수 있도록 합의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제협력에 대해서, 또 사회, 문화 등의 교류에 대해서 합의를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네번째는, 김정일 위원장이 저의 평양방문의 답례로서 서울을 방문하겠다는 데에도 합의를 했습니다. 이는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김정일 위원장이 내년 봄까지 서울을 방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6.15 평양회담 이후 우리 한국은 두 가지를 당면목표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시키는 것입니다. 남북의 국방장관이 서로 만났습니다. 그리하여 한반도에서 절대로 다시는 전쟁을 하지 말자, 6.15 남북정상회담의 공동선언을 적극 지지하자, 그리고 남북간에 끊겼던 철도를 다시 연결하는 공사를 휴전선에서 공동으로 협력하자는 데 합의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북한과 미국의 관계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큰 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평양에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북의 안전과 경제난의 해결을 위해 북, 미관계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습니다. 그의 긍정적 반응을 보고 북한에서 돌아온 후 클린턴 미 대통령에게 김정일 위원장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것만이 미사일 등 대북협상을 성공시키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의 모리 총리에게도 대북 적극정책을 권고했습니다. 북, 미, 북, 일관계의 개선 없이 남북관계만의 개선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결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북, 미관계와 북, 일관계의 개선에 적극 협력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이번 브루나이 APEC 정상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러시아 모두가 북.미간의 최고 지도자회담을 지지했습니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동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해서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두 번째 당면목표는 50년간의 단절과 불신과 적대로부터, 다시 교류와 신뢰와 동족애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교류를 실현하기로 합의한 바 있습니다. 지금 1천만 이산가족의 생사 확인과 상봉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경제협력을 위해서 남북간 철도의 연결공사가 다시 시작되고 있으며, 개성에 공단을 설립하기 위해서 남북간을 잇는 새로운 고속도로가 건설 중에 있습니다. 투자보장, 이중과세방지, 청산계정, 상사분쟁해결 등의 협정 초안에도 합의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남북한 선수 동시 입장, 각종 문화행사와 관광교류 등 사회. 문화적으로 많은 일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한반도에서의 평화노력에 대해서 오키나와 G-8 회의, 유엔 천년정상회의, 유엔 총회, 서울 ASEM 정상회의, 브루나이 APEC 회의, 그리고 이번의 싱가포르 ASEAN과 한, 중, 일 정상회의에서 각각 적극적인 지지를 보내주고 있습니다. 계속되는 전세계적인 지지는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확신하는 바입니다. 저는 이번 ASEAN과 한, 중, 일 정상회의의 의장인 고촉통 의장언론성명을 통해 총리가 이러한 지지를 표명해 주신 데 대해서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은 한국과 동아시아 나라 모두에게 보다 많은 경제적 기회를 주게 됩니다. 북한은 지금 사회간접자본 등 경제적 조건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수하면서도 저렴한 인적자원, 풍부한 지하자원과 수려한 관광자원 등을 갖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지리적 위치는 우리에게 중국의 동북 3성, 러시아의 연해주와 시베리아, 그리고 몽골과 중앙아시아에 대한 경제적 진출의 길을 크게 열어 줄 수 있습니다. 물류비용도 절감될 것입니다. 저는 싱가포르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북한으로의 교역과 투자 진출에 대해서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자 합니다.

우리 한국은 그러한 노력에 대해서 모든 정보와 자료의 제공 등 어떠한 협력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원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과 합작으로 진출하는 것도 환영할 것입니다.

존경하는 신사 숙녀 여러분!

북한은 지난 7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가입함으로써 동아시아의 안보에 대한 공동협력에 참가했습니다. APEC 정상회의는 북한의 실무그룹 활동참여를 환영하였습니다. 우리는 북한을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한반도의 평화와 동아시아의 평화는 하나입니다. 한반도에서의 번영과 동아시아의 번영도 긴밀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서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공동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노력을 다합시다. 미래는 이에 대해서 매우 긍정적인 보답을 할 것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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