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의 의의와 가치를 강조 | |||||
| 연설일자 | 1956.10.24 | 대통령 | 이승만 | 연설장소 | 국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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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형 | 기타 | 출처 |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3, 공보실, 1959 원문보기 | ||
| 내가 어려서부터 한문을 공부해서 여섯 살 때에는 천문자를 돌송(突誦)해서 부모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고 그 이후로는 한문만을 전력해서 19세 까지 사서와 경서를 전심해서 그 해 겨울에는 시전 열권을 또다시 돌송하고 시를 수백여 수 짓고 나오다가 배재학당에서 「협성회보」를 처음으로 내면서 논설 쓰기를 시작한 이후 해외에서 40년 생활에 잡지 주보 등 발간을 늘 계속해서 해온 것은 대부분을 순 국문으로 썼으니 그 주의는 잃어버린 나라를 회복하고 애국적인 민족정신을 고취하려면 국문 안가지고는 될 수 없다는 각오로 그와 같이 해나온 것이며 또 내가 발행한 잡지월보 주보 등의 모든 논설과 잡보 등은 순
국문이 아니고는 미, 포에 있는 동포들이 다 읽을 수 없어서 불가불 국문으로 해 가져야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었던 것이니 미, 포 한인들의 정형이 이러했다면 우리 국민 전부의 정형도 이와 같은 것이었을 까닭으로 전수히 순
국문을 쓰기를 주장해 나온 것이다. 또 그런 중에도 순 국문으로 쓴다고 사람들이 다 알아본다는 것은 아니니 순 국문에다가 한문말을 많이 집어넣어서 보통 사람이 알기 어려운 문자를 쓰면 아무 도움이 없을 것이므로 내가 많이 주의한 것은 보는 사람들이 가장 무식한 사람들이 읽어도 알 수 있는 말을 써주기 위함이니 국문으로 우리 민족 전체를 개명시키려면 다른 나라 사람보다 제일 속히 되어 나갈 수 있는 것을 믿으며 선왕의 국문 만든 공효를 칭찬하고 자랑해 온 것이다. 우리 한인들은 남녀를 물론하고 글을 보고 쓰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게 만들자면 불과 며칠 내에 다 해놓을 수 있을 것이니 중국같은 나라 사람들은 적어도 5, 6년 내지 10년은 글을 배워야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쓸 수도 있는데 우리는 아무리 둔한 사람이라도 몇 일 안에는 문맹을 퇴치할 수 있으니 내가 바라기는 우리나라에서 신문 잡지로 계몽 운동에 주의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다 한글로만 할 줄 알았던 것인데 내가 귀국한 뒤로 대단히 놀랍게 생각한 것은 신문이나 잡지에 순 국문을 쓰는 것이 하나도 없고 그 뿐 아니라 국문학자라는 분들이 이 국문을 더 쉽게 편리하게 만드는 대신에 보고 쓰기에 더 어렵게 만들며 불필요한 받침을 여럿을 첨부해 놓아 신문 배기는데 활자도 여럿을 가져야 하고 타자기 건판도 여럿을 만들어야 하게 되었으니 남들은 간단하게 속하게 하려고 애쓰는데 우리는 장해를 만드는 것을 보고 대단히 놀라워서 이것이 길게 습관이 되기 전에 각오시켜 주기 위하여 내가 몇 번 설명해 준 것이었는데 각오를 얻기는 고사하고 점점 더 굳건하게 습관이 되어 들어가는 것을 보니 내가 일러 주려는 것이 도움이 없을 줄을 깨닫고 그저 방임해 둔 것이다. 우리 민중은 영리한 사람들이 되어서 자발적으로 교정할 것을 믿고서 자유로 방임하는 것을 지혜롭게 알았는데 근래에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이 학자들이 연구해 가는 중에 혹 상당한 이유가 있는지 또는 이와 같이 변경해 나가는 것이 차차 국문을 개량하고 그 약점을 교정해 나가 지금보다 더 편리하고 또 속하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아서 나도 이것을 연구하며 생각하는 중이다. 그런데 근래에 서울 신문에서 새로이 국문으로 신문을 발행하기로 작정이 되어서 신간호가 나온 것을 보고서 나는 열정적으로 찬성하며 치하하는 바인데 이 신문의 유일한 목적은 세계 모든 소문과 보도를 우리 민중에게 속히 알려주기로 목적을 잡아서 이와 같이 신문을 잘 배겨내게 되면 신문이 앞으로 많이 발전되어 나갈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문으로서는 남에게 자랑할 만한 것이 없으니 첫째에 2, 30만장 이상 나가야 할 터인데 그것을 못하고 있으나 지금부터는 잘 만들면 이만한 정도에 이를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통령이승만박사담화집』 3, 공보실, 19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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