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여에 걸친 6.25전쟁의 비극으로 한국군을 포함한 유엔군 13만여 명이 생명을 잃었으며 이 중 미군 전사자는 5만 명, 실종자는 8천 1백 명에 이른다. 공산군측은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이 전사하였다.
6.25 전사자 유해는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에 유엔군과 조·중측 쌍방이 정전협정 제13항에 따라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17,500여 구를 일괄 송환했다.
그 후 북한에 있는 유해 송환은 별 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90년부터 1994년까지 북한지역 내 미군 유해를 북한이 단독으로 208구를 발굴하였고, 1996년부터는 미·북 협상으로 미국과 북한이 휴전 이후 처음으로 북한에서 공동조사를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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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결과 휴전선에서 45마일 떨어진 북한 운산에서 미군유해가 발굴돼 1996년 7월 29일 휴전선에서 공식행사를 거쳐 최초로 미국에 유해를 송환하였다. 1996년 이후 2005년까지 미·북은 공동으로 유해 총 229구를 발굴했는데, 북핵 문제로 미국측에 의해 2005년 중단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의 6.25 전사자 유해발굴은 6.25전쟁 50주년을 맞아 2000년부터 시작하였다. 6.25 전쟁 전사자 유해발굴기획단을 설치하고 3년간 한시 사업으로 유해 발굴 작업에 착수하였다. 그러다가 2003년 7월 사업 지속추진을 결정하고 2007년에는 유해발굴을 전문적으로 수행할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부대를 창설하였다.
2000년 4월, 육군은 창군 이래 최초로 다부동(경북 칠곡) 및 안강지역(경북 경주)에서 유해발굴을 시작해 유해 122구, 유류품 1,965점을 발굴하였고, 개화산(서울 강서구), 금성(강원 화천), 피의 능선(강원 고성), 백석산(강원 평창) 등에서 한 해 동안 총 344구를 발굴하였다. 유해 분석결과 신장 165㎝ 이하가 51%, 20세 미만이 16%나 됐다.
2006년 조사에서는 강원도 홍천 지역에서 전사한 고 장복동 일병의 유해가 발굴되었는데, 스테인레스 수통에 못으로 새겨 놓은 이름이 단서가 되어 신원이 밝혀져 55년 만에 유족들 품으로 돌아왔다.
2012년에는 미국에 의해 북한지역에서 발굴된 6.25 전사자 유해 12구가 국내로 봉환되었다. 북한지역 국군전사자 유해를 국내로 봉환한 것은 1953년 휴전협정 체결 이후 처음이었다. 이들은 한·미 공동감식 결과 1950년 12월 함경남도 장진호 전투 등에서 전사한 국군으로 확인되었으며, 유해 12구 가운데 2명은 미 7사단 15전차대대 소속 김용수 일병과 같은 사단 소속 고 이갑수 일병으로 신원이 확인되었다.
6.25전쟁 전사자 13만여 명 중 발굴된 국군 유해는 11,174명이며, 이 중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190명에 불과하다.(2022. 5. 기준) 미수습 전사자의 40%정도가 비무장지대와 북한지역에 남아 있으며 북한지역 내 한국군 유해는 약 3만 여구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되는 「한국전 미군유해 관련 협상 동향보고」, 「미북 유해송환 회담결과」, 「6.25 전사자 유해 발굴 사업 현황」 등 6.25 전사 유해 발굴 관련 기록물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용사들의 희생과 6.25 전쟁의 교훈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