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바이체커 독일연방공화국 대통령내외 주최 만찬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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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설일자 1989.11.20 대통령 노태우 연설장소 국제
유형 환영사 출처 노태우대통령연설문집 제2권 / 대통령비서실 원문보기


리하르트 폰 바이체커 대통령각하 내외, 그리고 귀빈 여러분.

나는 우리 내외가 귀국을 방문하도록 초청해 주시고, 오늘 저녁 이처럼 훌륭한 만찬과 함께, 나와 한국민에게 우정어린 말씀을 해 주신 대통령각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오랫동안 동,서독을 갈라온 고통과 불행의 분단장벽이 무너져내리는 역사적인 시기에 우방 독일연방공화국을 방문하게 된 것을 매우 뜻깊게 생각합니다.

베를린장벽은 독일연방공화국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평화와 인권에 대한 단호하고 일관된 신념과,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에서 미래를 찾으려는 절대다수 동독 국민들의 열망에 의하여 뚫렸습니다.

이러한 독일국민들의 신념에 대한 용기와 헌신에서 나는 위대한 종교개혁의 지도자 마르틴 루터의 전통이 살아 숨쉬는 독일을 느낍니다.

이 시대의 마르틴 루터는 한 사람이 아니라 얼굴이 없는 무수한 다중이라는 점이 다를 뿐입니다.

나는 먼저 이 위대한 인간성의 승리에 보내는 한국 국민들의 열렬한 성원과 지지를 대통령각하와 독일 국민들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독일 국민과 국토분단의 운명을 함께 나누어 온 한국민들은 그 쓰라림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기 때문에 지금 독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세기적인 사건에 큰 감동을 받고 있습니다.

나는 감히 독일 국민들의 기쁨에 한국민보다 더 큰 공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없다고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 한국민들은 독일 국민들이 전쟁의 파괴와 분단의 시련을 딛고 일어나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번영에 앞장서 기여하는 나라를 만든 데 대하여 깊은 존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역사 아에서 정직하고자 했던 독일 국민들의 성실성과 폐허를 낙토로 만들어낸 근면성을 우리 국민은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나는 또 각하와 같이 투철한 역사의식을 가진 지도자들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독일연방공화국 국민들의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통령각하.

동아시아 대륙에 수많은 민족이 흥망성쇠를 거듭해 왔으나 우리 겨레는 수천년의 역사를 통하여 고유한 말과 글, 독창적 문화를 꽃피워 오면서 정통성과 독립을 지켜 왔습니다.

한국인과 독일인의 만남은 이처럼 오랜 문화에 충격을 주었으며 우리 근대사에 큰 변화를 태동케 했습니다.

그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 우리나라의 왕세자와 신부 아담샬의 깊은 우정으로 거슬러 갑니다.

이 독일인 신부가 전한 서양의 천문, 역법, 산학과 천주교는 오랜 우리 문화와 서양문화를 접합하는 시금석이 되었습니다.

19세기말 조선왕조가 문호를 열었을 때 우리나라를 찾아온 독일인 친구들은 의사였으며, 궁중악대 지휘자였고, 무역과 관세를 포함한 근대적 제도를 도입케 한 내각의 고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근대화와 함께 법과 제도를 대륙법체계로 개혁하여 오늘날까지 지켜오고 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한국인이 독일에서 학문과 예술을 닦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발전에 자양이 되어 왔습니다.

오늘 저녁 만찬을 나누는 이 자리는 하이든이 소년 베토벤의 연주를 듣고 그의 천재성을 발견한 곳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어릴 때부터 베토벤과 슈만의 음악을 즐겨 듣고 괴테와 쉴러의 시를 애송합니다.

우리 두 나라는 양의 동서를 달리하는 먼 나라가 아니라 이처럼 우정과 문화적 가치를 함께 나누는 가까운 우방입니다.

양국간의 유대는 우리 두 나라 국민이 함께 추구하는 공통된 이상에 의하여 더욱 굳건해지고 있습니다.

대통령각하.

독일 국민들에게 ‘라인강의 기적’이란 말은 다소 해묵은 감을 줄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한강의 기적’은 그리 오래지 않은 말입니다.

독일이 이룩한 ‘라인강의 기적’은 우리 국민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격려를 주었습니다.

냉전체제로 국토가 분단된 비극 위에 빚어진 침략전쟁으로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잿더미 위에서 우리는 불사조처럼 일어나 신흥산업국가로 불리우는 오늘의 번영하는 나라를 일구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경제적인 번영만으로 인간이 행복해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염원이 오랜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게 했습니다.

한국은 이제 자유와 활력이 넘치는 새로운 민주주의의 나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작년 서울올림픽은 동서의 세계가 서로를 가르는 인종과 종교, 이념과 체제의 벽을 넘어 이해와 화합의 한마당을 이룬 훌륭한 축제였습니다.

우리 국민은 분단된 나라, 전쟁의 위험이 아직도 도사리고 있는 나라에서 열린 서울올림픽이 평화와 우정의 세계를 구현하는 올림픽의 정신을 한껏 고양 시킨 데 대해 큰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서울올림픽은 한세대에 걸쳐 이룩한 발전의 바탕위에 민주주의에 의해 꽃피워 진 온 국민의 참여가 뭉쳐져 그처럼 성공적인 대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각하.

우리 두 나라 국민이 이룩한 큰 성취는 분명히 온 세계에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근거한 민주주의만이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가치를 실현해 준다는 것을 실증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창의에 바탕한 자유시장경제와 개방사회만이 복지와 번영을 가져다 준다는 빛나는 실례가 되고 있습니다.

나는 독일과 한국의 사례가 오늘날 세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개방을 고무하는 데 크게 기여하고 있는 데 대해 우리 모두 높은 긍지를 가져 마땅하다고 확신합니다.

나뭇잎새 하나를 보고 천하에 가을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피땀흘려 지키고 가꾼 자유사회의 가치는 머지 않아 보람찬 결실을 수확 할 것입니다.

지금 중,동부 유럽과 동독의 지축을 올리는 저 개방, 개혁의 몸부림은 우리 두 나라에게 분단의 고통을 안겨준 전후 양극체제의 종식을 알리고 있습니다.

자유롭고 행복하기를 희구하는 인간의 열망이 동,서독일을 가르는 장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지금 수백만 명이 허물어진 벽을 넘어 독일연방의 자유롭고 번영된 사회로 오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독 두 나라 국민이 체제의 벽을 넘어 통합을 실현해 가는 것은 역사의 순리가 될 것입니다.

대통령각하.

각하께서는 “브란덴부르크문이 닫혀 있는 한 독일문제는 열린 채로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반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의 판문점에는 북한으로 통하는 ‘돌아오지 않는 다리’가 있습니다.

이 다리의 명칭이 바뀌지 않는 한 한국문제는 언제나 미결의 현안인 것입니다.

‘브란덴부르크문’은 열렸으나 판문점의 이 다리는 아직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다리’입니다.

수백만의 이산가족들은 지난 40년간 북쪽에 남아 있는 부모형제, 친척과 전화 한 통화, 편지 한 장 교환할 수 없음은 물론 그들의 생사여부와 거처조차 알 수 없습니다.

북한은 개방을 받아들이는 마지막 땅은 될지 모르나 그것을 끝내 거부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나는 북한과 대화와 교류를 통해 상호 신뢰의 기반을 구축하고 대결과 적대의 관계를 화해로 바꾸어 나가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나는 지난 9월 남북한이 우선 연합의 형태로 공존공영하는 단계를 거쳐 자주,평화,민주의 원칙에 따라 하나의 나라를 이루는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발표했습니다.

독일은 1970년대 ‘동방정책’을 통해 사회주의국가들과 관계개선을 이루었습니다.

한국은 ‘북방정책’을 추구하여 냉전체제로 부자연스럽게 관계가 단절되었던 나라들과 새로운 관계를 열어 가고 있습니다.

대통령각하.

파란의 20세기도 마지막 년대를 남겨 놓고 저물어 갑니다.

세계는 진정 빠른 속도로 바뀌고 있습니다.

한국과 독일은 지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두 나라는 지구촌으로 불리는 이 세계에서 이 시대의 위험을 제거하고 전진을 이룩하는 데 훌륭한 동반자가 될 것입니다.

이 지상에서 분단의 고통을 안고 있는 단 두 나라인 한국과 독일이 평화와 번영, 화해를 구가할 때 우리가 맞는 21세기는 인류의 염원을 실현하는 세기가 될 것입니다.

대통령각하 내외분의 만수무강을 위하여, 우리 두 나라 국민의 영원한 우호와 친선을 위하여 축배를 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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