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통일을 기원한 팝의 황제
'마이클잭슨(Michael Jackson)’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면 그때를 기념해 반드시 공연을 하겠다.”
-마이클 잭슨, 1999년 서울 자선공연 중에서


세계적인 팝스타가 한국을 찾았다. 검정색 선글라스에 중절모, 은박이 박힌 검정색 상하의와 구두 차림에 볼과 입술에는 붉게 화장을 한 모습이었다. 「스릴러」(Thriller 1982년 앨범)로 전 세계에 오싹한 충격을 안겨준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 그가 김포공항에 도착하기 2시간 전부터 국제선 제1청사 의전주차장에서 기다리던 3백여 명의 열성팬들은 일제히 “I LOVE MICHAEL(마이클을 사랑합니다)”을 연호하며 귀가 찢어질 듯 괴성을 질러대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사실 마이클 잭슨에게는 감회가 남다른 한국 방문이었다. 이미 일본 대만 필리핀 등 아시아 투어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면서 여러 차례 공연의지를 피력해 왔지만, 한국 공연은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1996년에 예정된 ‘History Tour in Seoul’ 공연은 발표와 함께 경실련을 비롯한 시민·사회·종교단체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쳤다. 문화체육부까지 내한공연 허가 여부를 놓고 때 아닌 몸살을 앓아야 했다. 다행히 18세 이상의 성인에게만 티켓을 판다는 조건으로 국내의 반대운동은 후퇴를 했지만, 그 여파로 6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연장에는 60% 정도인 3만6,000여명의 관중만이 입장해 다소 썰렁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1996년 10월 11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친 마이클 잭슨의 첫 내한 공연은 관중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문 워킹(Moon Walking)과 화려한 마이클 잭슨의 춤 동작에 관중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다. 공중으로 올라가는 널빤지 모양의 무대 끝에 매달려 공중에서 360도 회전하며 열창할 때에는 폭발적인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렇게 마이클 잭슨의 첫 내한 공연은 쇼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기쁨을 선사하며 막을 내렸다.

그리고 1년 뒤인 1997년 11월 21일, 마이클 잭슨은 장래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이 될 당시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와 마주앉았다. 전북 무주리조트에 대한 투자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방한한 마이클 잭슨을 김대중 총재가 만나길 희망했던 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당초 19일에 출국하려던 계획을 잠시 미뤘다. 

김대중 총재는 “자유와 평화, 인권을 위해 일한다는 점”(1)을 두 사람의 공통분모로 삼아 “잭슨이 부른 「Stop The War(전쟁을 멈춰요)」라는 노래는 분단국가인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작사를 할 테니 꼭 곡을 만들어 노래를 불러 달라”(2)고 요청했다. 마이클 잭슨은 판문점에서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 자선공연을 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그렇게 30분가량 환담을 하던 김대중 총재는 마이클 잭슨을 위해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휘호를 써서 선물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2월 26일에 열린 취임식에 마이클 잭슨을 초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이 서로 약속한 판문점 공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1999년 6월 25일, 전 세계 불우이웃을 돕기 위한 자선 공연으로 취지를 바꾼 '마이클 잭슨과 그의 친구들'이 서울에서 열렸다. 이 공연에는 스티븐 시갈,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맨 등 세계적인 스타와 한국의 유진박, HOT가 함께 무대에 올라 그 의미를 더해 주었다. 그 순간에도 여전히 한반도의 통일과 판문점 공연을 꿈꾸었던 마이클 잭슨은 한반도의 통일이 이뤄지면 반드시 공연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 간절한 희망을 품은 채 마이클 잭슨은 '마이클 잭슨과 그의 친구들' 공연이 있던 해로부터 10년 뒤인 2009년 6월 25일 미국 LA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전 세계인들은 슬픔에 빠졌고 애도했다. 김대중 대통령 역시 6월 26일 외신을 통해 "우리는 세계의 한 영웅을 잃었다. 또한 우리는 한국의 통일에 부단한 관심을 가지고 성원해 준 사랑스러운 벗을 잃었다. 한국 국민은 슬프다. 나 역시 개인적으로 우정을 나눠온 좋은 친구를 잃어 슬프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3)라며 마이클 잭슨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다. 그리고 같은 해 8월 18일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인의 가슴에 슬픔을 안기며 세상을 떠났다.

  • 참고
  •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시민, 사회단체 성명」, 『경향신문』, 1996.7.13.
    「문체부-“마이클 잭슨 딜레마”」, 『세계일보』, 1996.7.21.
    「마이클 잭슨 서울공연 현장 이모저모」, 『한국일보』, 1996.10.21.
    「진정한 엔터테이너상 제시/마이클 잭슨 공연 무얼 남겼나」, 『한국일보』, 1996.10.14.
    「열성팬 수백 명 “마이클” 연호」, 『한국일보』, 1996.10.10.
    「DJ와 마이클 잭슨 포옹」, 『동아일보』, 1997.11.22.
    「DJ, 마이클 잭슨 만났다」, 『한국일보』, 1997.11.22.
    「마이클 잭슨 판문점서 자선공연」, 『경향신문』, 19937.11.27.
    「국민의 정부 출범-취임식 이모저모」, 『서울신문』, 1998.2.26.
    「팝스타 마이클 잭슨 내한」, 『서울신문』, 1999.6.22.
    「마이클 잭슨 공연 ‘소문난 잔치’ 그쳐」, 『동아일보』, 1999.6.30.
    「DJ “우리는 세계의 한 영웅을 잃었다”」, 『뉴데일리』, 2009.6.26.

(1) 인용-「DJ, 마이클 잭슨 만났다」, 『한국일보』, 1997.11.22.
(2) 인용-「DJ와 마이클 잭슨 포옹」, 『동아일보』, 1997.11.22.
(3) 인용-「DJ “우리는 세계의 한 영웅을 잃었다”」, 『뉴데일리』, 2009.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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