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 (Madeleine K. Albright)’

1986년 서울을 방문한 미국 NDI(전국민주학회) 대표는 김대중 총재를 만나기 위해 그의 자택을 찾아갔다.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김대중 총재는 미국에서 온 외교학자에게 한국 민주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와 비전을 자세히 이야기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끝날 무렵 김 총재는 붓글씨로 ‘實事求是(실사구시)’라는 글을 써주었다. ‘참되고 실천하는 길을 걷는다면 언제든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 말은 불행한 상황에도 뜻을 굽히지 않겠다는 김대중 총재의 다짐처럼 느껴졌다. 

 

그로부터 12년 후, 김대중 총재는 대한민국의 제 15대 대통령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되었다. 1998년 2월 25일 김대중 당선자의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과거에 선물 받은 글씨 액자를 들고 가 김대중 대통령의 서명을 받았다.
한국의 대통령과 미국 국무장관으로서 가진 공식 면담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자신이 구상한 햇볕 정책을 설명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들과는 다르게 북한과의 평화공존을 실제로 추구할 계획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미국 정부를 대표해 김대중 차기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적극 지지한다고 공식 표명했다.
당시, 미국 클린턴 정부는 남북 간 긴장완화에 있어서 김대중 차기 정부에 상당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신임 미국 국무장관으로 지명되었던 1997년 미국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그는 아시아가 지난 60년 동안 미국이 3번의 전쟁을 치렀으며 미군 10만 명이 주둔하고 있는 지역이란 것을 상기시키며 아시아에서의 상호 안보 및 번영을 증진시켜야 할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었다. 그러면서 자신은 평화의 중재자이자 문제의 해결자로서 미국의 비전을 가지고 있음을 피력했다. 올브라이트는 세계 일류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세계 일류의 외교를 주장하면서 자신이 남한과 북한의 관계 개선을 위해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 해 말 한국이 국가 부도의 위기 상황에 처하자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긴박하게 돌아갔다. 한국의 사회경제적 불안이 북한의 도발을 야기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한국 관련 긴급 안보회의가 열렸고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해 국방장관과 안보 보좌관 등은 미 재무부에 한국 지원을 강력히 요청했다.

 

1998년 5월 1일 김대중 대통령을 청와대를 예방하고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했던 올브라이트 장관은 2000년 6월 23일 해 모양의 브로치를 달고 한국을 다시 찾았다. 브로치를 사용해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올브라이트였기 때문에 그의 브로치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해 모양 브로치는 김대중 대통령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북한을 자연스럽게 국제사회로 이끌기 위한 한미 공조의 뜻을 담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그리고 2000년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기 위해 북한에 간 올브라이트 장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에 대한 가능성을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부터 직접 확인했다. 돌아오는 길에 올브라이트 장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해 “상대방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지적인 인물”(1)이라고 했던 김 대통령의 평이 정확했다고 생각했다.

 

2002년 11월 한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온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했다. 그것은 두 사람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자연스럽게 북한 문제를 놓고 노력했던 옛 일들이 떠올랐다.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한 대통령의 견해를 물었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한은 그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을 때까지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북한 지도자들은 아무도 믿지 않아요. 그들은 미국이 핵무기도 없는 세르비아를 혼냈던 일, 국제적 비난을 무릅쓰고 핵무기를 보유했던 파키스탄이 지금은 미국의 동맹국이 된 것을 지켜보았어요. 그들은 핵무기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아줄 것으로 믿고 있어요. 북한으로 하여금 안보상의 위협이 없다는 점을 확신시켜 줘야 합니다. 우리는 클린턴 행정부 임기 말에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릴 아주 좋은 기회를 가졌었지요.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지만 아무튼 당신과 클린턴 대통령이 내게 보낸 지지를 앞으로도 잊지 않을 것입니다.”(1) 대통령의 대답에는 슬픔이 묻어있었다.

  • 참고
  • 「“한국위기 대선후 해결하라”/WP지 보도,미정부 대책회의서 결정」, 『매일경제』,1997.12.29
    「DJ,개혁정책 자세히 설명… 올브라이트 “금융개혁 돕겠다”」, 『동아일보』,1998.5.2
    「한-미정상 전화대화/올브라이트장관도 전화 '북미회담 김대통령 덕분'」, 『한겨레』,2000.10.16.
    「올브라이트 來韓 표정/예정보다 1시간 늦게 서울 도착」, 『문화일보』,2000.10.25.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회고록 ‘마담 장관’」, 『월간중앙』,2003.9

(1) 인용 - 「한-미정상 전화대화/올브라이트장관도 전화 '북미회담 김대통령 덕분'」,
    『한겨레』, 2000.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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