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의 거대한 어머니 ‘박경리’

1994년 8월 15일 새벽 2시, 작가 박경리는 원고지 12장으로 26년 동안 매달렸던 대하소설 토지의 끝을 맺었다. 그해는 동학 1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소설의 대미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의 현장인데 묘하게 인연이 맞았네요. 서희와 수양딸 양현의 소리 없는 사슬이 풀리고 장연학이 모자와 두루마기도 벗어던진 채 만세를 부르는 그런 장면들입니다.”(1)
박경리 작가가 대통령 내외에게 대하소설 토지의 결말을 설명했다. 그날은 8월 27일 토요일, 박경리 작가를 청와대로 초청한 김영삼 대통령 내외는 조찬을 함께 하며 우리 문학사에서 기념비적인 작품의 집필을 마친 것을 축하하고 격려했다.
“대통령의 초청과 치하에 감사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고마움일 뿐만 아니라 우리 문단과 문인들 전체에 대한 대통령의 각별한 애정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1)

 

대하소설 토지 완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뜨거웠다. 지난 1969년 「현대문학」에 연재하기 시작해 전 5부 총16권으로 완간된 토지는 1897년 동학혁명의 실패와 좌절에서부터 1945년 8·15 민족해방에 이르기까지 거의 600명에 이르는 등장인물의 개인사가 그물망처럼 얽히고 설켜있다. 작가 박경리는 그 이야기 속에 치열한 고통의 시간을 견뎌낸 우리 민족의 아픔과 생명력을 고스란히 담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박경리 작가가 소설 토지에서 우리 겨레의 독특한 정서인 한을 생명의 핵으로 새롭게 부각시킨 것에 대해 공감을 표했다.
“우리 민족은 어떤 시련과 고난을 겪는다고 해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꽃피울 수 있다고 생각하며 정치를 해왔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나도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많은 질곡을 거쳤지만 그때마다 우리 민족에 대한 희망과 저력을 믿어왔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좌절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견뎌왔습니다.”(1)
김 대통령은 한이 희망과 창조라는 밝은 쪽으로 승화될 때 민족은 새로운 동력을 갖게 될 것이라 말했다. 박경리 작가 역시 집필의 고통 속에서도 좌절 다음에는 희망이 있었음을 이야기했다.
“대통령께서 말씀하신대로 저도 글을 쓰면서 항상 한국 국민은 희망이 있고 저력이 있고 끈기가 있다는 점을 소설의 바탕에 깔았습니다. 대통령이 생각하는 한국인의 인내심,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에 대해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그러한 자세와 소재를 가지고 글을 쓰고 있습니다.”(1)

 

1926년 일제 강점기에 태어난 작가 박경리의 삶은 소설 토지의 이면에 숨은 또 하나의 이야기였다. 10대 중반에 태평양 전쟁을 겪었고 일제의 가혹한 징병, 위안부 징발, 과중한 노동과 기아에 놓인 지옥같은 민족의 현실을 겪은 작가는 중년에서 고희를 바라보는 나이에 이르도록 작품을 집필하면서부터는 6·25때 남편을 형무소에서 잃은데 이어 사위(시인 김지하)마저 형무소에 보내야 했고, 어린 아들의 갑작스런 죽음과 암 투명의 고통을 짊어진 채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로 자신을 지탱했다.
집필 도중 연재를 두 번이나 중단할 정도로 고통과 좌절을 수시로 느끼면서도 끝내 소설에 마침표를 찍은 작가의 위대한 정신에 사회적 경의가 쏟아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박경리 작가에게 한 작품을 2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쓸 수 있는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박경리 작가는 소설 쓰는 일은 생활의 일부였다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집 근처에서 밭농사를 하며 흙을 만지고 흙과 대화를 하고 고추를 따면서 생명에 대한 외경을 되새기고 그 생명있는 것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글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자연을 보고 자연을 생각하면 문제가 풀리고 영감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1)라고 대답하며 작가에게 큰 위로가 되었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제 소설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가가 후기에 이런 말을 써놓았습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한국인을 더욱 사랑하게 될 것이다.’ 이 한 마디가 제가 글 쓰는 보람입니다.”

 

작가 박경리는 2007년 7월말 폐암이 발견됐으나 고령을 이유로 치료를 거부했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어 2008년 4월 4일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한 그는 의식불명 상태에 빠져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다 2008년 5월 5일 오후 2시 45분 경 향년 81세로 영면하였다.

  • 참고
  • 「박경리「토지」8월말 완간/첫 연재 26년만에… 제16권 마무리작업」, 『경향신문』, 1994.5.4.
    「박경리 대하장편 「토지」 25년만에 완결」, 『세계일보』,1994.8.13.
    「박경리의 「토지」(외언내언)」, 『서울신문』, 1994.8.19.
    「박경리 대하소설/토지/우리문학에 무얼 남겼나」, 『동아일보』,1994.10.4.
    「작가를 향한 사회적 경의/김병익(일요일 아침에)」, 『서울신문』,1994.10.16.
    「토지」 25년 갈무리/박경리(이사람 알지요?)」, 『국민일보』, 1994.12.26.

(1) 인용 - 「보도자료 - 김대통령, 소설가 박경리씨와 조찬」,1994.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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