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민족의 한을 씻은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민족의 한을 씻은 마라톤의 영웅 ‘황영조’

관련정보 관련정보가 없습니다.
황영조 선수에게 전화걸어 우승 축하 격려
영예수여(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한국선수단 마라톤 선수 황영조 등)
제47주년 광복절 경축사(바로셀로나 올림픽 관련)
영예수여(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마라톤선수 황영조 등)(제35회 국무회의 안건)
노태우 대통령 황영조 마라톤선수에게 훈장 수여
이희호 여사 2000년 이웃돕기 유공자 황영조 선수 서훈
김대중 대통령 황영조 바로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접견
김대중 대통령 공동모금회 홍보대사 황영조 선수 접견
김대중 대통령 황영조 선수 접견 악수
대한뉴스 제1918호-제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수단 귀국 개선
이웃돕기 성금 전달(12.1)
황영조 선수에게 전화걸어 우승 축하 격려
영예수여(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한국선수단 마라톤 선수 황영조 등)
제47주년 광복절 경축사(바로셀로나 올림픽 관련)
영예수여(제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대회 대한민국 선수단 마라톤선수 황영조 등)(제35회 국무회의 안건)
노태우 대통령 황영조 마라톤선수에게 훈장 수여
이희호 여사 2000년 이웃돕기 유공자 황영조 선수 서훈
김대중 대통령 황영조 바로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접견
김대중 대통령 공동모금회 홍보대사 황영조 선수 접견
김대중 대통령 황영조 선수 접견 악수
대한뉴스 제1918호-제 25회 바르셀로나 올림픽 선수단 귀국 개선
이웃돕기 성금 전달(12.1)
이어지는 만남

관련인물이 없습니다.

1992년 8월 15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린 제47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대통령의 경축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되었다.
"친애하는 7,000만 내외 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새로운 감격과 희망 속에서 광복 47주년과 건국 44주년을 맞습니다.(중략) 나라를 잃었던 시절, 꿈결에도 조국의 광복을 그려온 열사들께 오늘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빛나는 승전보를 고하게 된 것은 우리 모두의 큰 기쁨입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애국가로 시작하여 애국가로 끝났습니다. 태극기를 가슴에 단 한국의 아들이 마라톤에서 우승하여 56년 전 민족의 통한을 씻었습니다. 이 자랑스러움을 갖고 맞는 광복절이기에 우리 7,000만 겨레 모두의 기쁨은 더욱 큰 것입니다."(1)
노태우 대통령의 연설 속에는 두 명의 마라토너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193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스타디움에 운집한 12만 명의 관중들은 스타디움으로 맨 먼저 들어오는 선수를 보고 깜짝 놀랐다. 마라톤 경기를 중계하던 독일 아나운서는 선수의 가슴에 일장기가 붙어 있었지만 그가 한국 선수임을 알았다.
‘한국 대학생이 세계의 건각들을 가볍게 물리쳤습니다. 그 한국인은 아시아의 힘과 에너지로 뛰었습니다. 타는 듯한 태양의 열기를 뚫고, 거리의 딱딱한 돌 위를 지나 뛰었습니다. 그가 이제 트랙의 마지막 직선코스를 달리고 있습니다. 우승자 ‘손’이 막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2)
당시 결승선 통과 후 손기정은 만세도 하지 않았고 환호도 부르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고개를 숙인 채 탈의실로 퇴장했다. 그것은 올림픽의 꽃인 마라톤의 금메달리스트가 보일 수 있는 태도가 아니었다.

그로부터 56년이 지나 대한민국의 태극기를 가슴에 단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 경기장으로 맨 먼저 들어왔다. 황영조 선수의 금메달은 제1회 대회인 1896년 아네테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치러진 마라톤에서 월계관을 쓴 두 번째 아시아 선수였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첫 번째는 1936년 베를린 대회의 손기정 선수였다.
황영조 선수는 결승선을 통과하며 손을 높이 들어 보였다. 민족의 통한을 단숨에 날려준 순간이었다. 황영조는 한 인터뷰에서 “마라톤 레이스가 아니고 전쟁이었다. 난 무조건 이겨야 했다. 더욱이 경기 당일은 56년 전 손기정 선생님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금메달을 딴 날이었다.”(2)고 말했다.
황영조의 금메달로 한국 마라톤의 위상은 크게 높아졌다.

8월 13일 노태우 대통령은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참가하고 돌아온 선수단 3백 43명과 임원 및 경기단체장들을 청와대로 초청하고 마라톤에서 우승한 황영조 선수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수여하는 등 메달리스트 48명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격려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여러분은 세계에 한국인의 이름을 떨치고 온 국민에게 큰 기쁨과 용기를 주었다”면서 “그동안의 여러분의 노고를 온 국민과 함께 치하하면서 아낌없는 박수를 드린다”(3)고 말했다.

올림픽 제패 이후 황영조는 1994년 10월 9일,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의 자존심 하야타 도시유키를 44초 차로 제치고 2시간 11분 13초의 기록으로 우승, 다시 한 번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면서 원폭 피해자들의 한을 달랬다. 1991년에는 영국 셰필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대회 최고 기록으로 우승했으며 1992년 벳푸 - 오이타 국제 마라톤대회에서 한국 마라톤의 염원이었던 2시간 10분대를 돌파(2시간 8분 49초)했고, 1994년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서 한국최고기록 수립(2시간 8분 9초) 등 마라톤 선수 생활 동안 그는 숱한 기록과 굵은 족적을 남겼다.

(1)인용 -「제47주년 광복절 경축사」 1992.8.15
(2)인용 -「스포츠인 황영조」 『네이버캐스트』
(3)인용 -「황영조등 48명에 체육훈장/노 대통령올림픽선수단 포상·격려」 『경향신문』 1992.8.14 (독일역사박물관(DHM) 독일방송기록보관실(DRA) 자료)
참고자료
참고자료
  • 「황영조등 48명에 체육훈장/노 대통령올림픽선수단 포상·격려」 『경향신문』 1992.8.14
  • 「스포츠인 황영조」 『네이버캐스트』
  • 「제47주년 광복절 경축사」 1992.8.15.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의견이 있으시면 내용입력 후 제출하기를 눌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