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한·소 협력시대의 서막을 연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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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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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만남호텔 입구 회전문 안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노태우 대통령은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악수를 한 뒤 포옹하듯 등을 두드리며 “바쁜 일정인데도 건강하신 걸 보니 아주 초인적인 분이시군요.”(1)라는 말로 일본 공식 방문을 마치고 온 고르바초프 대통령을 환영했다. 예정된 일정이 수차례 수정·연기되고 제주공항 도착조차 늦어졌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한국 방문은 우리 외교에서 냉전 질서를 마무리할 획기적 사건이 될 터였다. 1988년 7월 7일 사회주의권과의 경제 교류를 촉진하는 내용의 7·7선언을 발표하며 북방외교에 나섰던 노태우 대통령은 조용한 스타일이었지만, ‘북방외교’에 관해서는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 대표적인 사건이 1990년 5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사상 첫 한·소 정상회담이었다.(2) 그 자리에서 두 정상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완전한 수교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것과 외교, 정치, 경제, 과학기술 및 문화의 모든 분야에서 두 나라 간 교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 (한국과 소련은 10월 1일 정식으로 국교를 수립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2월 노태우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는 최초로 모스크바를 방문했다. 제2차 정상회담에서는 ‘모스크바선언’을 채택, 한반도 문제 해결에 군사력 사용을 배제하고 평화적인 대화를 통해 신뢰를 구축하며 이를 바탕으로 단계적인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로부터 4개월 만에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한국을 전격 방문한 것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모스크바 공식 방문에 대한 답방 형식이었지만, 전통적으로 우호관계에 있는 북한을 제치고 적대관계에 있던 한국을 먼저 찾아왔다는 점에서는 아주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제주공항에 늦게 도착한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만찬장에도 11분이나 늦은 11시 11분에 나타났다. 이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일본에서의 바쁜 일정을 화제로 말문을 열었고, 노태우 대통령은 “처음에는 직접 공항에 나가려고 했는데 하도 시간이 유동적이어서 못 나갔다”(1)고 답하며 분위기를 풀어나갔다. 결국, 이날의 만찬은 밤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지만, 노태우 대통령은 ’시장이 반찬‘이라는 우리 속담을 빗대 “요리 솜씨가 나쁜 부인은 저녁을 늦게 내놓지만, 오늘 만찬의 요리 솜씨는 역사상 처음 맞는 귀한 손님을 위한 것이니 최선의 솜씨일 것”(1)이라고 농담했다. 자정 3분 전부터 답사를 시작한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내일 회담은 좋은 회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가 뒤늦게 시계를 보며 “오늘 회담은”(1)이라고 정정을 해 가벼운 웃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다음 날, 노태우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단독회담장에서 1시간 15분가량 한·소 협력 및 한반도 긴장완화, 북한 문제 등 핵심 현안을 논의하고, 장소를 옮겨 양측 공식수행원이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확대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안정이 동북아는 물론 세계평화에 긴요하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한국의 유엔가입과 북한 핵 사찰문제에 공동보조를 취하기로 합의했다.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한·소 우호 및 협력 조약’ 체결을 제안하기도 했다. 비록 소련이 같은 해 12월 완전히 해체되면서 조약 체결 문제는 신생 러시아 정부의 과제로 넘어갔지만,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제안은 양국 관계 증진에 커다란 진전을 가져왔다. 이날 고르바초프 대통령은 16시간 30분이라는 짧은 한국 방문을 마치고 모스크바로 돌아갔다. (1)인용 -「제주공항 밝힌 고르비 미소-밤의 국빈 도착서 만찬까지」 『경향신문』 1991.4.20. (2)참고 - 노재본 외 174명 「노태우 대통령을 말한다」 동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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