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장애로 세상을 바꾼 사람 ‘강영우’

장애로 세상을 바꾼 사람 ‘강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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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강영우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보좌관 접견
말씀자료(강영우 박사 접견시), 대통령비서실
노태우 대통령 강영우 박사(맹인박사) 접견
노태우 대통령 강영우 박사(맹인박사) 접견
이희호 여사 장애인재활국제학술대회 참석자 접견 강영우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임교수 겸 미국 교육부 CET0093043 의장 선물 받음
이희호 여사 장애인재활국제학술대회 참석자 접견 강영우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임교수 겸 미국 교육부 전국장애인자문협회 의장과 악수, 공보처, 2001.jpg
노무현 대통령, 강영우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보좌관 접견
말씀자료(강영우 박사 접견시), 대통령비서실
노태우 대통령 강영우 박사(맹인박사) 접견
노태우 대통령 강영우 박사(맹인박사) 접견
이희호 여사 장애인재활국제학술대회 참석자 접견 강영우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임교수 겸 미국 교육부 CET0093043 의장 선물 받음
이희호 여사 장애인재활국제학술대회 참석자 접견 강영우 노스이스턴 일리노이대 특임교수 겸 미국 교육부 전국장애인자문협회 의장과 악수, 공보처, 20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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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하지만 장애라는 것이 인생의 장애물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_ 강영우,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중에서

1991년 7월 19일, 청와대에서 노태우 대통령 내외와 마주 앉은 강영우 박사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박사의 건강을 물었다. 한국에서의 일정이 매우 바쁘다는 것을 알고 걱정한 것이었다.
“강 박사는 자주 조국을 찾아오시고 또 오셔서는 대학 강의를 비롯하여 각종 강연으로 무척이나 바쁘게 보내신다고 들었는데 방한 중 보고 느끼신 점이나 건의하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죠.”
중학교 시절 사고로 실명한 후, 어머니와 누나를 잃고 맹인 고아가 된 강영우 박사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3년 8개월 만에 미국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한국 최초의 시각 장애인 박사다. 강영우 박사는 한국과 미국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유머를 더해가며 이야기했다. 노태우 대통령 내외는 그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경청했다. 그의 말과 행동이 수많은 장애인들의 희망이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더구나 비장애인도 하기 힘든 일에 도전하고 꿈을 이룬 강영우 박사의 이야기를 노태우 대통령은 귀담아 듣고자 했다.
“내가 듣기로는 전세계인의 추앙을 받고 있는 헬렌 켈러여사와 루즈벨트, 케네디 등 미국 대통령과의 만남을 통하여 미국인 장애인 복지정책이 크게 발전되었다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들이 진행됐는지 아십니까?”
강영우 박사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 문제가 가장 우선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장애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그건 자신의 삶의 문제인 것이다. “더 좋은 세상은 평등하게 보호받을 권리, 무차별, 독립적인 삶,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세상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교육, 고용, 주거, 교통의 이용, 보험과 관리 등에서 이러한 4대 원칙이 존중되고 실천되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며 국가와 사회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부터 바뀌기를 원했다.
노 대통령은 강 박사의 의지력에 감탄하며 그동안 겪었을 어려움을 위로했다.
“저는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것이 아니라, 장애를 통해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보이지 않는 눈으로 세상을 보는 법을 책으로 쓸 수 있었지요. 장애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장애를 통하여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
노태우 대통령 내외와 강영우 박사의 환담은 잔잔한 감동 속에서 끝이 났고 강영우 박사는 노태우 대통령에게 자신의 책 ‘어둠을 비추는 한 쌍의 촛불’을 선물했다. 이듬해인 1992년 강영우 박사는 노태우 대통령의 지원으로 사회복지법인 '국제교육재활교류재단'을 설립, 특수교육과 재활 전문가들의 국제 교류로 장애인 교육, 재활, 복지 발전 등에 이바지했다.
강영우 박사는 2001년부터 2009년까지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로 일했고, 유엔 세계장애위원회 부의장 겸 루스벨트 재단 고문으로서 7억 명에 가까운 세계 장애인의 복지 향상을 위해 헌신했다. 그 결과, 2006년에는 미국 루스벨트 재단 선정 127인의 공로자에 선정되었고, 2008년에는 국제로터리 인권상을 수상했다.
강영우 박사는 노 대통령과의 만남이 있은 후 세계 장애인의 인권과 복지를 위해 일하다 2012년 췌장암으로 영면했다.

• 위 내용은 1997년 7월 19알 노태우 대통령의 말씀자료와 박사의 저서에 실린 내용을 바탕으로 대화상황과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 「노태우 대통령 말씀자료- 강영우 박사 접견」 1991.7.19.
  •  강영우 『내눈에는 희망만 보였다』 2012. 두란노.
  • 「미서 일시 귀국한 한국인 첫 맹인박사 강영우씨」 『세계일보』 19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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