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아프리카의 지성, 시인, 대통령 ‘레오폴드 상고르'

아프리카의 지성, 시인, 대통령 ‘레오폴드 상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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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트셍고르 사진1
레오폴트셍고르 사진2
레오폴트셍고르 사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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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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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날의 레오폴드 상고르는 수백 년 동안 서구 열강들의 지배를 받아온 아프리카의 자유를 열망했다. 프랑스의 지배 아래 있던 세네갈에서 태어나 22세에 프랑스 파리에서 유학하고 아프리카인으로는 최초로 프랑스의 중등교사가 되었다. 프랑스에서 살며 아프리카 문화의 특징을 발견하고 아프리카의 잠재력에 대해 믿음을 갖게 된 상고르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세네갈에서 정치활동을 시작했다.

아프리카 연방체의 설립을 위해 헌신했던 상고르는 1960년 조국 세네갈의 독립을 이끌며 초대 대통령에 올랐다. 그는 아프리카의 현실에 바탕을 둔, 개방적이고 민주적이고 인도적인 성격을 띤 아프리카 사회주의를 주창했고 가톨릭 교도이면서 이슬람교도가 압도적으로 많은 나라를 통치하며 5차례의 연임으로 20년간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시인이기도 한 그가 방한했을 때, 한 기자가 시인이 어떻게 정치를 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시화되지 않은 정치가 얼마나 삭막한지 아십니까?"(1)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를 만큼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상고르 대통령에게 시 정신과 정치 신념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상고르 대통령 내외가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1974년 4월 22일 우리나라를 공식방문했다. 아프리카 국가원수로는 이디오피아, 니제르, 가봉에 이어 네 번째로 한국에 온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 내외는 김포공항에서부터 박정희 대통령과 큰 영애의 영접을 받았고 큰 길가에는 환영인파가 물결쳤다. 이름도 생소한 아프리카 국가의 대통령을 위해 국민적 환영행사를 벌이며 최고의 국빈대접을 해야 했던 이유는 북한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1962년에 우리나라와 수교했으나 소원한 관계에 있었던 것과 달리, 북한은 1972년 세네갈과 수교를 맺고 상고르 대통령을 평양에 초대했다. 평양을 다녀온 상고르 대통령이 유엔과 비동맹회의에서 북한을 지지하게 되었다고 해석한 우리 정부는 상고르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했다.
박정희 대통령과 레오폴드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가진 1차 정상회담을 시작하기에 앞서 양국간의 우호증진을 위해 우리나라의 무궁화 대훈장과 세네갈의 최고훈장을 서로 교환하고 선물을 증정했다. 상고르 대통령은 국립박물관과 경복궁을 관람한 소감을 말하며 “오래된 한국전통문화의 정신에서 한국이 어떻게 오늘날 급속하고 훌륭한 공업화와 경제성장을 이룩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상고르 대통령의 소감을 듣고 박 대통령은 우리 한반도는 지정학으로 주변 열강에 둘러싸여 있는 관계로 과거에 외침을 많이 받아 많은 중요문화재가 손실됐다고 대답했다. 상고르 대통령은 한국이 통일되면 강대국이 될 것을 확신한다.”(2)고 화답했다.
양국 원수는 경제기술협력문제에 관해 논의하고 한반도 정세를 비롯한 동북아와 아프리카에 관해서 광범위하게 의견을 교환했다.

한국과 세네갈 양국정부는 정상회담이 끝난 후 공동성명을 통해 한국과 세네갈 양국 협력과 관련, 두 나라 원수는 협력관계가 여러 분야에서 점차 구체화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상호이익이 되는 조치로서 문화경제기술 부문에 협력을 강화하는 데 합의했다”(3)고 밝혔다.
이 공동성명에서 박 대통령은 남북대화를 재개하기 위한 대한민국 정부의 노력을 자세히 설명했고 상고르 대통령은 이를 높이 평가하며 한국의 통일은 성실한 대화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룩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국 원수는 상고르 대통령의 방한이 두 나라의 우호협력관계 증진에 크게 이바지했다고 인정했다. 상고르대통령은 박대통령과 큰 영애를 비롯해 한국 정부와 국민이 보여준 따뜻하고 친절한 환대에 깊은 사의를 표하고 세네갈로 돌아갔다.

레오폴드 상고르 대통령은 20년간 재임한 대통령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나 문인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95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시는 명인을 잃었고, 세네갈은 대변인을 잃었으며, 아프리카는 몽상가를 잃었고, 프랑스는 친구를 잃었다.”(4) 2001년 12월 20일은 20세기 가장 중요한 아프리카 지식인이자 정치인을 잃은 날로 기록됐다.

(1)인용 -「(대통령과 문학) 외국의 대통령들은 “위대한 작가는 또 하나의 정부”」 『중앙일보』 1997.10.11.
(2)인용 - 양국원수의 환담내용을 발췌 인용하고 대화의 배경이 될 만한 내용을 추가했습니 다. 「청와대서 1시간 한 세네갈 1차 정상회담」 『매일경제』 1979.4.23.
(3)인용 -「한 세네갈 2차 정상회담 아아 공통염원 위해 협력강화 9개항 공동성명 발표」 『경향신문』 1979.4.25.
(4)인용 -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의 애도문. 「세네갈의 유명 문학가」 『주 세네갈 대한민국 대사관-뉴 포커스』 2013.3.11
참고자료
참고자료
  • 「세네갈 국 상고르 대통령 내달 22일 방한」 『동아일보』 1979.3.22.
  • 「한국에 오는 흑인정신」 『동아일보』 1979.4.18.
  • 「나흘 체한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 내일 내한」 『동아일보』 1979.4.21.
  •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 내일 방한」 『경향신문』 1979.4.21.
  • 「상고르 세네갈 대통령 방한의 의의 대아주 우호확대의 새전기」
  • 『경향신문』 1979.4.21.
  • 「청와대서 1시간 한 세네갈 1차 정상회담」 『매일경제』 1979.4.23.
  • 「한 세네갈 공동성명 평화통일 정책 지지」 『매일경제』 1979.4.25.
  • 「대아 비동맹 외교에 새 전기」 『경향신문』 1979.4.26.
  • 「(대통령과 문학) 외국의 대통령들은 “위대한 작가는 또 하나의 정부”」
  • 『중앙일보』 1997.10.11.
  • 「세네갈의 유명 문학가」 『주 세네갈 대한민국 대사관-뉴 포커스』 2013.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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