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국제외교계의 웅변가, 약소국을 대변하다 ‘카를로스. P. 로물로

국제외교계의 웅변가, 약소국을 대변하다 ‘카를로스. P. 로물로

관련정보 퓰리처상 , 판문점
카를로스 사진1
카를로스 사진2
카를로스 사진3
카를로스 사진1
카를로스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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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만남
2차 대전이 끝나면서 세계는 냉전체제에 돌입했다. 전후 국제평화와 안전 유지를 목적으로 UN을 설립했지만, 회원국들은 미국을 축으로 한 자본주의 진영과 소련을 축으로 한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 사사건건 충돌했다. 조선의 독립에 대해 미국과 소련이 첨예하게 대립하자 필리핀 대표인 카를로스.P.로물로 외상은 이렇게 일갈했다.
“ 금일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불행한 국가의 하나이다. 조선으로 말하면 마땅히 자유를 향유할 자격이 충분한 것이므로 미·소 양 당국은 가급적 속히 독립된 조선공화국을 인정할 방책을 취할 것을 나는 요망하는 바이다.”(1) 1947년 10월 30일, 유엔 총회 정치위원회에서는 양 진영의 격론 끝에 조선에 유엔감시위원회를 파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은 언론인 출신의 필리핀 외상 카를로스 로물로는 당시 필리핀이 미국을 옹호하는 입장에 있으면서도 종종 미국과 소련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조국 필리핀이 오랫동안 스페인과 미국의 식민지배를 당했던 아픈 역사의 경험 때문이었을까. 로물로 외상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비서구권과 약소국의 처지를 대변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UN 헌장의 정신과 본보기를 보인 몇몇 나라처럼 고색창연한 식민지제도가 완전히 사라지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만일 이것이 실현되지 않는다면 유혈과 폭동이 있을 뿐일 것이다.”(2)

카를로스. P. 로물로 외상은 1949년과 50년 유엔총회 의장으로 거듭 선출되었고 국제 외교계에서 그의 영향력은 날로 커졌다. 그 무렵, 한반도 상황을 우려하고 있던 로물로 의장은 6.25 전쟁 발발소식이 전해지자 소련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즉시 총회를 열어 유엔군 참전안을 주도해 통과시켰다. 그의 조국 필리핀은 미국과 영국에 이어 3번째로 한반도에 파병했다.
로물로 의장은 훗날 한국과의 인연에 대해 “1950년 한국이 역경을 겪고 있을 때 나는 필리핀군의 한국파병을 결정하는 데 힘썼고 또 이에 앞서 한국이 유엔에서 승인을 받았을 때 기뻤다.“(3)라고 술회했다.

1961년 12월 9일, 카를로스.P.로물로는 주미필리핀 대사 자격으로 처음 내한했다. 군사정부가 들어선 지 7개월 남짓, 윤보선 대통령이 이름뿐인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로물로 대사의 방한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다. 로물로 대사는 도착성명을 통해 한국에 온 이유를 밝혔다.
본인은 깊은 관심을 갖고 한국혁명정부의 탄생을 보아왔으며 이제 한국사태를 스스로 보고 이야기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본인은 한국의 신정부에 대해서 아직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군사혁명의 장래는 군사정부지도자들이 서약에 밝힌 것처럼 1963년에 민정으로 복귀할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4)
도착 당일, 로물로 대사는 외무부를 방문하고 이튿날에는 판문점을 돌아봤다. 방한 3일째 되는 날, 오전 10시 청와대를 예방한 로물로 대사는 윤보선 대통령으로부터 대한민국의 발전에 이바지한 공적을 인정하는 문화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대통령과의 접견 시간은 30분이 채 되지 않았다. 10시 30분에는 국가 최고회의 박정희 의장을 만났으나 대화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고 기록에도 남아있지 않다. 다시 청와대로 돌아온 로물로 대사는 윤보선 대통령이 베푸는 오찬회에 참석했다.

(1) 인용 -「금일 조선은 가장 불행하다」 『동아일보』 1946.11.19.
(2) 인용 - 40년대 번역체와 국한문 혼용 기사를 이해하기 쉽도록 고쳤습니다.「식민지제도를 일소하라」 『경향신문』 1947.9.20.
(3) 인용 -「(인터뷰) 로물로 비외상 “탈이데올로기로 새조류 적응”」 『동아일보』 1972.6.13.
(4) 인용 - 도착성명 중 발췌 인용하고 문맥에 따라 교정했습니다. “한국사태에 깊은 관심” 도착성명」 『동아일보』 1961.12.10.
(5) 인용 -「유엔 가입 못할 이유 없다」 『경향신문』 1961.12.13.
참고자료
참고자료
  • 「금일 조선은 가장 불행하다」 『동아일보』 1946.11.19.
  • 「식민지제도를 일소하라」 『경향신문』 1947.9.20.
  • 「한국동란과 유엔대책의 회고(완)」 『경향신문』 1952.10.30.
  • 「12월 9일 방한 비로물로씨」 『동아일보』 1961.11.30.
  • 「유엔 가입 못할 이유 없다」 『경향신문』 1961.12.13.
  • 「박대통령 비중외상과 요담」 『매일경제』 1972.6.16.
  • 「로물로 접견」 『중앙일보』 1972.6.17.
  • 「카를로스 로물로옹 사망 필리핀외무」 『경향신문』 1985.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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