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세계의 벽을 넘은 첫 국가대표 음악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세계의 벽을 넘은 첫 국가대표 음악인, 피아니스트 한동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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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일 사진1
한동일 사진2
한동일 사진3
한동일 사진1
한동일 사진2
한동일 사진3
이어지는 만남
"내 음악의 뿌리는 미국과 유럽에 있다.
나는 그곳에서 음악을 배우고 연주 활동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러나 내 정신과 정서의 뿌리는 한국에 있다."

한동일은 194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음악신동으로 세간의 관심을 끌었던 그는 4세 때부터 아버지(한인환, 서울시립교향악단 창단 구성원)에게 매우 엄격한 음악수업을 받았다. 6·25 전쟁 때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피난한 뒤에는 피아노가 없어 집에서 가까운 미 공군 사령부 강당에 있는 피아노로 연습을 했다.
1953년 미 공군 문선단이 공연을 왔던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동일이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본 주한 미 공군 사령관 새뮤얼 앤더슨 중장은 단박에 후원을 자처하며 연주회를 주선했다. 그때부터 한동일은 한국과 일본의 미군기지를 순회하며 50회에 가까운 공연을 했고, 연주를 감상한 병사들은 철모를 돌려 1달러, 2달러씩을 모았다. 그렇게 쌓인 5천 달러는 미국유학 자금이 되었다.

1954년, 6월 3일 소년 한동일(당시 배재중 1학년)이 13세의 어린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임기를 마친 앤더슨 중장의 귀국비행기를 타고 미국을 향해 가는 동안 한동일은 마음껏 음악 공부를 할 수 있다는 기대에 한껏 부풀었다. 그 해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고 각종 음악 콩쿠르에서 수상하며 워싱턴 국립교향악단을 비롯해 여러 교향악단과 협연했다. 하루도 쉴 틈 없는 나날이 계속되었다.
1956년 4월에 카네기홀 데뷔 무대로 뉴욕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을 앞둔 한동일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의 희망은 베토벤을 연주하는 것과 베토벤이 연주되기를 원했던 그 방도를 연주하는데 있다.”(2) 라고 말하는 등 음악에 대한 당찬 포부를 밝혔다. 미국 언론들은 한동일을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에서 온 피아노 신동’으로 소개했고 그가 가는 곳마다 ‘코리아’도 알려졌다. 이 어린 피아니스트는 연주회에서 관객들의 앵콜 요청에 간혹 애국가를 연주하기도 했다.

1958년 6월 극동지역 순회공연에 오른 한동일은 하와이와 일본을 거쳐 27일 김포공항에 도착했다. 4년 만에 밟는 한국땅이었다. 72일 이승만 대통령은 경무대를 예방한 한동일을 “Smart boy!” 라고 부르며 코리아의 영광을 세계에 나타낸 천재 음악가라고 치하하고 장학금을 수여했다.(3)
한동일의 첫 연주회는 미군 오산기지에서 열렸다.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인연에 대한 보답이었으리라. 7월 5일 이화여대강당에서 열린 공식적인 귀국독주회에는 한국이 낳은 천재 피아니스트를 보기 위해 삼천여 명의 청중이 운집해 대성황을 이루었다.

그로부터 7년 후인 1965년 10월 26일.
레벤트리트 재단이 주최하는 제24회 레벤트리트 국제콩쿠르에 참가한 한동일은 심사위원장이었던 레너드 번스타인으로부터 ‘동양에서 온 모차르트’라는 극찬을 받으며 우승했다. 그것은 대한민국 음악사에 기록될 대사건으로 한동일은 국제음악콩쿠르에서 우승한 최초의 한국인이 되었다. 그의 우승 소식은 많은 국민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고 재능있는 학생들은 제2의 한동일이 되기 위해 잇달아 유학길에 올랐다. 오래지 않아 세계 수준의 한국 음악가들이 배출되기 시작했다.

어린 음악도가 미 군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간 지 50년이 되던 2004년 6월 1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도미 50주년 기념 연주회’가 열렸다. 관객들은 예순이 넘은 한동일과 그의 91세 아버지 한인환 옹이 함께 연주하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이 공연을 계기로 한동일은 17년 넘게 재직한 보스턴 음대에 사직서를 냈다.
이듬해 2월, 제1호 국가대표 음악인 한동일은 50년 8개월 만에 영구귀국했다. 현재 그는 순천대학교 석좌교수로 있으면서 한국의 음악도들을 가르치며 새로운 음악인생을 살고 있다.

(1)인용 - 「울산대 음대 교수로 영국귀국 피아니스트 한동일」 『문화일보』 2005.3.3.
(2)인용 - 「베토벤을 연주희망」 『경향신문』 1956.3.13.
(3)이승만 대통령 접견 상황은 국가기록물과 배재학당 88회 동창회의 서동화씨가 쓴「여행을 하며-한동일 선배님」(2011.8.7.)의 내용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입니다.
참고자료
참고자료
  • (학술지) 『세대』 제8권 통권89호. 1970년 12월 pp.271~276
  • 「꼬마음악가들 콩쿨대회를 앞두고 (10)한동일군」 『경향신문』 1952.11.1.
  • 「천재소년한동일군 독주여행차로 도일」 『경향신문』 1954.1.12.
  • 「천재소년 한동일군 앤중장과 동도도미」 『경향신문』 1954.6.3.
  • 「한동일군 27일 귀국」 『경향신문』 1958.6.21.
  • 「한동일군 초청 미 11개 교향악단 피아노 독주자로」 『동아일보』 1962.8.5.
  • 「캐네디여사 열렬한 찬사 한동일군 백악관연주서」 『경향신문』 1962.11.20.
  • 「피아니스트 최고의 영예 한동일군 국제음악경연서 1위」 『경향신문』 1965.10.27.
  • 「한동일 상상이상의 재질」 『동아일보』 1965.10.28.
  • 「한동일군의 연주에 또 격찬 뉴욕각지의 음악평론가들」 『동아일보』 1966.3.30.
  • 「피아니스트 한동일 아버지와 협연」 『동아일보』 2004.6.3.
  • 「인생의 3악장은 고향에서-김수현의 문화가산책」 『SBS뉴스』 200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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