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아버지의 땅을 찾은 할리우드 배우 ‘필립 안(Philip Ahn)’

아버지의 땅을 찾은 할리우드 배우 ‘필립 안(Philip Ahn)’

관련정보 도산천고 , 도산공원
필립안의 북한 방문 계획
박정희 대통령이 Philip Ahn 에게 보낸 서한
박정희 대통령이 안필립(Philip Ahn)에게 보낸 서한
육영수 여사가 필립 안(Philip Ahn)에 보낸 서한-선물 감사
박정희 의장 필립안 접견
박정희 대통령 필립안 접견
박정희 대통령 필립안 접견
이승만 대통령 필립 안(Philip Ahn) 접견(아시아 최초의 헐리우드 배우&도산 안창호 큰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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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 제206호-경무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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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지는 만남
"내 방까지 태워다 주시겠습니까?"
평안도 사투리를 쓰는 남자가 반도 호텔 엘리베이터 보이에게 말을 건넸다. 미국식 예절이 몸에 밴 남자는 시종 상냥하고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의 이름은 필립 안(Philip Ahn). 할리우드에 진출한 최초의 아시아계 배우로 영화 「모정(1955)」과 한국 전쟁 고아의 아버지라 불리는 딘 헤스 대령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전송가(1957)」에 출연해 할리우드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인물이었다. 그가 1959년 3월 12일 한국을 찾았다. 그리운 아버지가 잠든 땅을 밟은 것이었다.

필립 안의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도산 안창호 선생으로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적 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헌신했던 지도자였다. 일제는 그의 영향을 두려워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이 1938년 3월 10일 만 59세의 일기로 서거할 당시 민중시위가 일어날 것을 우려해 망우리 공동묘지로 가는 길목을 봉쇄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당시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은 친족 두 명이 전부였다. 이승만 박사도 만시 <도산천고(島山千古)>를 지어 애도할 만큼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통곡했지만, 식민치하에서 떠나야 했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마지막 길은 외롭고 고독했다.

1959년 3월 18일 오전 11시, 필립 안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을 경무대로 예방했다. 아버지와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운동 노선에서 차이를 보이기는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인 필립 안을 옛 친구를 다시 만난 듯 반겼고 조국 땅을 밟은 기분이 어떤지 물었다.
“내 가친이 일제와 투쟁하였고 그로 인하여 돌아가신 것도 이곳이며 또 그의 영면의  땅인 조국을 생전 처음 밟으니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1)
감회가 깊은 듯 천천히 이야기를 이어가는 필립 안을 바라보던 이승만 대통령은 어머니 이혜련 여사와 다른 가족의 안부, 필립 안의 미국 활동 등을 살뜰히 물었다. 그 자리에서 필립 안은 한국을 주제로 한 한·미 합작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아쉬운 만남의 자리를 마무리했다. (2) 짧은 만남이었다.

이후 필립 안은 도산 안창호 선생의 묘소를 이장하기 위해 여러 차례 한국을 찾았다. 노력이 결실을 보기까지는 처음 한국 땅을 밟고 14년이 흘러야 했다. 1973년 11월 10일, 필립 안은 미국에서 옮겨 온 어머니의 유해와 망우리 묘지에 묻힌 도산 안창호 선생의 유해를 강남에 조성된 도산공원에 합장했다. 그 자리에는 정일권 국회의장을 비롯해 사회 각계 인사가 참여했다. 김종필 국무총리는 조사에서 “도산 선생은 우리가 높이 우러러볼 민족의 큰 별이요, 역사의 밝은 등불”이라고 강조하며 “도산공원은 선생과 부인의 영원한 안식처요, 우리 민족혼의 광장이요, 국민의 정신적 성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3)

한국을 테마로 한 한·미 합작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포부를 이루지 못한 필립 안은 1978년 2월 28일 미국의 한 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날은 한국 시간으로 3·1절이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장남으로 태어나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배우로서, 이후 성공한 레스토랑 경영인으로서 화려한 인생을 보낸 필립 안은 1984년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이름을 남겼다.

(1)참고-「필립안 고국에 온 보람」 『경향신문』 1959.3.21.
(2)이 부분의 대답과 정황은 필립 안이 기자와 나눈 인터뷰 내용을 인용 참고했습니다.「처음으로 찾은 모국-할리우드에선 일류배우 도산 선생 장자 필립 안」 『경향신문』 1959.3.14.
(3)기사에 실린 김종필 국무총리의 조사 부분만 인용「위대한 선각-민족사의 등불로」 『경향신문』 1973.11.10.
참고자료
참고자료
  • 「위대한 선각-민족사의 등불로」 『경향신문』 1973.11.10.
  • 「처음으로 찾은 모국-할리우드에선 일류배우 도산 선생 장자 필립 안」 『경향신문』 1959.3.14.
  • 「필립 안」 『경향신문』 1978.3.4.
  • 「민족국가 수립위해 헌신한 지도자」 『네이버 캐스트-안창호』
  • 「필립안 고국에 온 보람」 『경향신문』 1959.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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