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만남

한국에 미 대통령 전용기를 보낸 린든 B. 존슨(Lyndon Baines Johnson)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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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정보 블레어 하우스
1965.3.1자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의 방미 초청서한에 대한 각하의 감사 회답 친서, 대통령비서실
1965.7.25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 친서에 대하여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힌 박정희 대통령의 회답 친서
각하와 육영수 여사를 미국에 국빈으로 초청한다는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의 친서
대한민국 국회가 월남에 일개사단 파견을 승인하였다는데 사의를 표명한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대통령의 친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이 Pueblo호 피랍과 한국에 대한 무장공비 침투에 대하여 1968년 1월 26일 발표한대국민 메시지 전문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의 친서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회답 친서
방미 후 감사친서-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
월남에 한국군을 증파하겠다는 2월 28일자 발표에 만족감을 표시한 린든 존슨(Lyndon Johnson) 미국 대통령의 친서
월남에 한국군을 증파했을 경우 북한의 침략에 대처할 미국의 원조를 요구한 각하의 특별제안에 대한 미국의입장을 설명한 린든 존슨 미국 대통령의 친서
월남전에 한국군 파병의 증가로 한국의 안전과 경제발전에 차질을 빚지 않도록 보증하겠다는 린든 존슨 미국대통령의 친서
하와이 정상회담시 베풀어 준 후대에 사의를 표하는 각하명의 친서(존슨 대통령)
(선물)미국 린든 존슨 대통령 사진
(선물)백마상
(선물)말 안장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 주최 리셉션 참석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 한·미 정상회담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과 선물 교환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과 선물 교환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과 선물 교환
박정희 대통령 존슨 미국 대통령과 선물 교환
대한뉴스 제520호-박정희 대통령 미국 방문(존슨 미국 대통령 환영사)
대한뉴스 제521호(2-1)-박정희 대통령 내외분 미국 방문
대한뉴스 제593호-존슨 미국 대통령을 환영하자
대한뉴스 제647호-박신자 선수 은퇴
영원한 그 모습(22-3)-박정희대통령내외분 1965년 미국방문
겨레의 지도자 3집 (15-8)-1966년 10월 박정희대통령 초청 존슨미국대통령 방한 정상회담 및 방한일정
겨레의 지도자 4집(8-3)-1968년 박정희대통령 미국방문 존슨미국대통령 정상회담 및 방문일정
대한뉴스 제595호(2-1)-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대한뉴스 특보)
대한뉴스 제595호(2-2)-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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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각으로 1965년 5월 17일, 엷은 구름 몇 조각이 백악관 지붕 위로 한가롭게 흘러갔다. 1차 한미정상회담을 마친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백악관 남쪽에 위치한 장미 정원을 걸으며 가벼운 환담을 하는 중이었다.
"비행기가 불편하지는 않았습니까?"
"귀하의 비행기는 비행기라기보다는 마치 큰 호텔과 같았습니다."
존슨 대통령이 묻고 박 대통령이 답하는 형국이었다.
"몇 시간이나 걸렸습니까?"
"17시간 걸렸습니다."(1)
비행기는 존슨 대통령이 한국에 보내준 미 대통령전용 보잉707을 의미했다. 1961년 11월의 첫 미국 방문을 떠올리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깍듯한 국빈 대접이었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외국 대통령의 전용기를 빌려 타야 하는 대한민국의 대통령! 대한민국 경제의 자주 자립이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존슨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시 <한일회담> 타결을 추진하던 박 대통령의 한국 내 정치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미국이 그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었다. 존슨 대통령은 “앞으로는 16시간 정도로 줄일 수 있는 비행기를 보낼 테니 자주 놀러 오십시오.”라고 말하며 기자들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박 대통령도 기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두 정상 사이엔 분명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1)

1965년 2월 공군과 해병대를 투입하면서 월남전의 서막을 알린 미국은 한국군의 증파가 시급한 상황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1964년 12월부터 한국군의 월남 파병을 요청했다. 이에 국회는 ‘청부전쟁’이라는 발언까지 쏟아내며 월남 파병을 반대했다. 하지만 정부로서는 미국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할 수 없었다. 미국이 원조 감축과 미군 철수라는 카드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1차 정상회담이 공식수행원과 보좌관의 동석 없이, 이례적으로 빨리 끝나버린 것도 실무자급의 절충 과정에서 마찰이 빚어졌기 때문이었다.

백악관으로 들어간 존슨 대통령은 다른 나라 원수들에게는 소개하지 않은 곳까지 손수 안내하며 설명을 달기 시작했다. 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전심전력하는 모습이었다. 이미 존슨 대통령은 정부기관에 메모를 보내 박 대통령 환영 절차를 ‘빈틈없이’, ‘거창하게’ 할 것과 신문들이 박 대통령에 대한 기사를 크게 취급하도록 지시하고, 박 대통령 일행이 워싱턴에 머무는 동안 웬만한 성명 발표는 보류해 달라고 당부했다. 대접에도 온 정성을 쏟았다. 백악관과 박 대통령 일행이 머무는 블레어 하우스에는 쌀밥과 김치를 준비하고, 박 대통령 내외에게 순금 대통령 문장, 은제 탁자 세트, 백악관 유화, 존슨의 저서, 자녀들에게 줄 휴대용 하이파이 전축 등의 선물로 환대의 마음을 표현했다. 환영 만찬 뒤, 무도회에서는 한국민요 아리랑을 준비해 연주하기도 했다.

다음 날인 5월 18일 오후 5시, 박 대통령은 다시 백악관을 찾아 존슨 대통령과 2차 회담을 열고 한·미 현안을 토대로 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주된 내용은 한국의 월남지원과 한국의 자립을 위한 미국의 1억 5천만 불의 장기 차관 제공, 주한미군의 군사력 유지 등이었다. 이 자리에서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지원에 감사하며 미국은 이전 같은 수준의 주한 미군을 유지할 것을 약속, 베트남에 파병된 2,000명의 한국군이 미국 의회에서 대한민국 원조 안을 통과시키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박 대통령은 워싱턴을 떠나면서 “여기에 오기 전에 나는 자립경제 달성을 위한 한국노력에, 또 공산 침략에 대항하여 자유를 수호키 위한 우리의 투쟁에 미국이 얼마나 관심과 이해를 가졌는지 의심했지만, 이제 나의 이 두 가지 의구는 해소됐다.”(2) 말했다.

이후 박 대통령과 존슨 대통령은 1966년 10월 23일의 마닐라 정상회담과 1966년 10월 31일에 시작된 존슨 대통령의 2박 3일 한국 방문, 1968년 4월 17일 호놀룰루에서 열린 정상회담을 통해 월남전 지원과 한국에 대한 미국의 원조 및 주한미군 유지 사항을 공고히 하며 두 나라의 결속을 이어갔다.

(1)이 상황은 기사에 실린 일화를 재구성한 것이고 두 대통령의 대화는 인용입니다. 「박대통령 체미 이모저모」 『경향신문』 1965.5.18.
(2)인용 - 「만족스러운 방문」 『동아일보』 1965.5.20.
참고자료
참고자료
  • 「존슨 대통령이 파병요청」 『동아일보』 1965.1.21.
  • 「한미 정상 1차 회담」 『동아일보』 1965.5.18.
  • 「박대통령 체미 이모저모」 『경향신문』 1965.5.18.
  • 「공동목표달성에 긴밀히 협조 한국안전 위해 군경원 계속」 『동아일보』 1965.5.19.
  • 「만족스러운 방문」 『동아일보』 1965.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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