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경무대의 첫 식사
1960년 8월 13일 오전 10시, 국회에서 윤보선 대통령의 취임식이 열렸다.

“4월 혁명으로부터 정치적 자유와 유산을 물려받은 제2공화국 정부는 이제 국민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경제의 자유를 마련하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다.”(1)
취임사에서 결연한 의지를 밝힌 윤보선 대통령은 그날 오후 안국동 8번지에서 경무대로 이삿짐을 옮겼다.

이삿짐을 푼 신임 대통령 내외는 경무대를 둘러보고 무척 실망했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한 후 4개월 동안 방치된 경무대의 집무실과 접견실은 텅 비어있었고 관저 주방에는 그릇은 고사하고 숟가락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대통령 관저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임 대통령의 첫 식사 준비에 비상이 걸렸다. 결국, 대통령 내외는 중앙청 구내식당에서 출장 나온 요리사가 만든 양식으로 식사를 마쳤다. 모르긴 해도 양식을 좋아하는 대통령을 배려한 것일 것이다. 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부족한 것투성이인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들은 고개를 저었다. 이틀 동안 한식이 식탁에 오르지 않았지만, 대통령은 불평하지 않았다.(3)

윤보선 대통령
훗날, 윤보선 대통령은 취임 첫해에 경무대의 이름을 청와대로 고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훗날, 윤보선 대통령은 그날의 기억을 기록하며 취임 첫해에 경무대의 이름을 청와대로 고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나는 경무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름을 바꾸고 싶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총독의 관저였고 자유당 때 독재체제를 강화한 곳이어서 오명의 잔영을 씻어버리고 싶었다.”(2)

윤 대통령은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한 세련된 지식인이었다. 사저에 있을 때 사용한 태극문양 식기는 윤 대통령이 영국 유학 시절에 가문의 문장이 찍힌 그릇을 보고 아이디어를 내서 직접 디자인한 것이었다. 고급스럽고 세련된 전통미가 돋보였던 그 식기들은 재임시절, 청와대에서 국내외 귀빈을 대접할 때도 그대로 사용했다.

한식과 양식을 골고루 좋아했던 윤보선 대통령이 가리는 것이 있다면 ‘밥’이었다.

윤 대통령은 꼭 잡곡밥을 먹었다. 쌀이 아주 귀했던 시절에도 충분히 흰쌀밥만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었지만 어려서부터 밥만은 콩, 보리, 팥, 조 등 여러 가지 잡곡을 섞어 먹었다. 이런 식사 습관은 그의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또 하나의 규칙은 평생 술을 멀리하며 절제된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일찍이 ‘술은 입에도 대지 말라’는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다. 그의 집에서 쓰는 술잔이 유난히 크기가 작았던 것도 술을 적게 마시기 위해서였다.
윤보선 대통령의 집안은 장수를 누리기로 유명했는데
고종황제가 가문에 내린 글귀에서 오래된 건강법을 짐작할 수 있다.

節食 服茶 羞可 少病 (절식 복다 수가 소병)
적게 먹고 차를 마시며 음식을 조절하면 병이 적다 (4)

윤보선 대통령의 재임 기간, 대통령의 음식을 책임진 요리사에 관한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정국은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새로운 정부의 살림에 기틀이 잡히기도 전에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취임사에 담은 자신의 꿈을 펼쳐보기도 전에 윤보선 대통령은 1년 7개월 만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참조
  • 유진, 『대한민국 대통령 그들은 누구인가』, 프리윌
  • MBN <청와대의 밥상 > 제작팀, 『대통령의 밥상』, 고래미디어
  • 「윤보선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15>민주당 신구파의 싸움(2)」, 『동아일보』, 1989.7.11
  • (1) 인용 – 제4대 대통령 취임사, 1960.
  • (2) 인용 - 「윤보선 회고록, 외로운 선택의 나날<15 >민주당 신구파의 싸움(2)」, 『동아일보』, 1989.7.11.
  • (3) 취임 첫날의 내용과 정황은 관련 기사와 회고록을 발췌, 참고한 것입니다.
    「“부엌”없는 경무대」, 『매일신문』, 1960.8.17
  • (4) 인용 -「'정관헌' 40~50년대 서구식 다실」,『영남일보』, 2004.07.22.